[청사초롱] 위로가 필요한 때

2022. 11.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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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6년 4월 3일 성균관에서 과거시험이 열렸다.

숙종 임금의 성균관 방문을 기념하는 시험이었다.

시험 당일 1만명이 넘는 응시자가 성균관에 몰려들었다.

시험장에 모인 사람이 예상을 뛰어넘은 이유는 응시자들이 하인을 많이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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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1686년 4월 3일 성균관에서 과거시험이 열렸다. 숙종 임금의 성균관 방문을 기념하는 시험이었다. 좁은 시험장에 응시자가 몰릴 것을 예상한 조정은 사전에 명륜당과 반수당 사이의 담장을 헐어 공간을 확보했다. 시험 문제는 두 곳에 나눠 게시했다. 문제를 받아 적으려고 몰려드는 응시자를 분산시키려는 조처였다. 질서 유지를 담당할 금훤도사와 금란관 11명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의원도 대령시켰다.

시험 당일 1만명이 넘는 응시자가 성균관에 몰려들었다. 조정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였다. 응시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먼저 시험장에 들어가려다 넘어지고 짓밟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새벽에 시험장을 열자마자 벌어진 참극이었다. 어가를 수행하는 의관까지 부상자를 치료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장에서만 여덟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부상이 악화돼 추후에 죽은 사람도 많았다.

숙종은 즉시 시험을 취소하고 사태 수습을 명하는 한편 원인 파악에 들어갔다. 첫 번째 원인은 공간이었다. 응시자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담장을 헐어 공간을 확장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세밀한 고려가 부족했다. 명륜당 구역과 반수당 구역은 높낮이가 달라 가파른 계단이 놓였고, 출입문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경사진 길이었다. 사전에 평탄화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넘어져 죽는 우환은 우발적인 사고로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애초에 꼼꼼히 헤아리지 못해 결국 이처럼 참혹한 일이 생겼다.” 사헌부의 참사 원인 분석이다. 기울어진 공간에 군중이 모이면 위험하다는 사실은 조선시대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공간 확장 과정에서 장소를 관리하는 성균관과 공사를 담당하는 선공감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두 번째 원인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험장에 모인 사람이 예상을 뛰어넘은 이유는 응시자들이 하인을 많이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글씨 쓰는 사람, 참고서를 짊어진 사람, 음식과 자리를 운반하는 사람, 심지어 답안을 대신 작성하는 사람까지. 응시자 한 명이 십수 명을 데리고 들어가니 시험장이 혼란할 수밖에.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험장을 개방한 시각은 캄캄한 새벽이었으나 횃불을 밝히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던 응시자들이 넘어지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났다.

사망자의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정승 김수항의 조카 한 사람도 이때 죽었다. 하지만 모든 재난은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한 법. 사망자 대부분은 성균관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시골 선비들이었다. 경기 이천의 응시자 최우관은 숙질 두 사람과 함께 죽었다. 시신을 수습할 친척도 없어 노비가 조정에 지원을 호소했다. 조정은 ‘휼전’을 거행했다. 휼전은 재난을 당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지금으로 치면 복지와 재난 지원 사이 어디쯤엔가 자리한다. 지원금은 장례를 치르기도 버거운 액수지만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다. 국가가 재난의 피해자와 함께한다는 믿음이다.

군중에 의한 압사 사고는 도시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피하기 어려운 사고다. 출퇴근길 지하철 환승역, 주말의 유원지, 체육시설, 놀이공원…. 핼러윈을 앞둔 이태원이 아니라도 인파가 몰리는 곳이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피해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도 성급해 보인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에 흥분할 때도 아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후진국형 사고라지만 공동체 의식만큼은 성숙해졌다. 지금은 뜻하지 않은 재난의 피해자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우선할 때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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