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세계경제전망] 멀어지는 중국의 미국 추월, 결정타는 미국의 기술 통제
변곡점 맞은 미·중 경제 패권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성장 목표를 5%에서 6%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나 2020년엔 2%를 간신히 넘겼다. 2021년에는 기저효과에 의해 성장률이 8%까지 반등했지만, 2022년에는 다시 3% 안팎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1990년을 정점으로 거품경제 붕괴 직후 거쳤던 패턴이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밟았던 저성장의 궤적과 똑 닮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슬로우 모션 금융위기’를 동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진앙은 바닥 모를 부동산 거품 붕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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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주도 세계 공급망 재편 급진전
게임체인저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
미 중소 제조업도 활력 되살아나
중국은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들어
」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 심각
부동산은 중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 전역에 걸쳐 거품이 꺼지고 있다. 대형 부동산 기업인 헝다그룹이 사실상 파산에 빠진 것은 벌써 3년 전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71개 대형 부동산업체의 절반 이상이 Caa1 이하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그 절반 이상은 등급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의미다. 이런 이유에서 서서히 거품이 꺼지는 슬로우 모션 금융위기 얘기가 나온다.
중국의 지방에선 예금 인출이 중단되자 시민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앞에선 분양권자들의 집단 항의가 발생하기도 했다. FT는 “서서히 가라앉는 중국 경제는 집권 3기에 접어든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대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성장동력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10.4%의 고속성장을 달성했다. 2010년부터 2019년에도 여전히 연평균 7.7%에 달했다.
그러나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을 감추고 참고 기다림)’를 끝내고 ‘대국굴기(大国崛起)’를 선언하면서 미국이 견제하고 나선 데 이어 코로나 충격까지 겹치자 중국의 고도성장은 본격적으로 주춤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성장률이 올해 3.2%, 내년에는 4.4%로 전망했다. 문제는 그 이후 장기 전망이다.
‘공동부유’도 경제활력 훼손
블룸버그는 중국에 대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2050년까지 향후 약 30년간 국내총생산(GDP)으로 어떤 경우든 고성장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본 시나리오를 4.6%로 볼 때, 경기가 좋아도 5% 안팎에 머물고, 부동산 시장 부실로 금융위기라도 닥치면 3% 아래로 곤두박질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7억6000만명에 이르는 생산가능 인구가 6억명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도 성장률 저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성장 둔화 여파로 인한 재정 적자도 심각하다. FT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올 1~9월 1조 달러로 추정된다. 루처 샤르마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은 “인구 감소, 국가부채, 생산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2.5% 성장도 어렵다”며 “적어도 2060년까지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고 관측했다. 성장엔진이 꺼지면서 미국 추월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중국은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극적인 결과를 얻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1만2500달러에 달한다. 최근 5년 사이 러시아·브라질·터키·멕시코·아르헨티나를 모두 제쳤다. 14억 인구를 가진 국가로선 기적에 가까운 성과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가 강화하면서 중국은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이 공동부유(共同富有)를 내세우며 민간기업을 밀어내고 당 주도의 공기업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중국의 성장률 둔화를 부채질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도 ‘글로벌 웨스트’ 가속
중국의 결정적 아킬레스건은 반도체였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조차 글로벌 공급망 와해라는 이유에서 처음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그런 목소리가 힘을 잃고 있다. 오히려 서방의 주요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주도 공급망 구축 정책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첨단기술 자급이라는 중국의 희망,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의 고민을 해부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생산체제로 작동하는 만큼, 중국이 독자적으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이 분석대로 최근 반도체 생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협업체제가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기든 래크먼 FT 칼럼니스트는 “당 대회에서 전임자를 강제로 내보내는 듯한 상황이 연출된 시진핑 1인 독재 체제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현상을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미국은 핵심 생산 장비를 공급하면서 반도체 생산은 한국과 대만에 맡겨왔다. 하지만 중국이 중국몽을 선언하면서 2049년까지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전략 물자의 통제권을 바짝 거머쥐고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 위축 불가피
반도체는 미·중 패권 전쟁의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대만에 넘겨줬던 생산 능력을 미국 본토로 회귀시키고 있다. 인텔을 비롯해 미국 반도체 기업도 그동안 중단했던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켜 반도체 공장 건설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는 이유다. 더 나아가 미 상무부는 10월 7일 더 근본적으로 첨단 컴퓨팅 반도체 및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칩 등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섰다.
상무부는 “두 건의 규칙으로 발표된 이번 수출 통제는 중국이 첨단 컴퓨팅 칩을 확보하고, 슈퍼컴퓨터와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이 장치와 능력을 대량 살상무기(WMD)를 비롯한 첨단 무기 시스템 생산, 자동 군사시스템, 인권 유린 등에 사용하고 있다”며 통제 사유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외국 기업이 중국 내 생산시설을 소유한 경우에는 개별적 심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언제든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반도체 패권을 확고히 굳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을 늘리고, 중국 내 판매는 언제든지 제동이 걸릴 수 있게 되면서다. 한국엔 양면성이 있다. 미국의 통제로 중국의 반도체 추격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는 시간을 벌었다. 다만 수출에 제약이 따르고 미국의 영향력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 북부는 자동차, 남부는 반도체
미국의 제조업 부활도 글로벌 경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FT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미국 남부의 반도체 벨트를 조명했다. 이 신문은 ‘미국에서 힘을 되찾고 있는 제조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도체 공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미 남부의 주요 도시가 산업단지의 최적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마이애미·올랜도·휴스턴·댈러스·샤롯·잭슨빌·로리·탄바·내슈빌·플레이노·오스틴 등이 뜨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의 반도체 공장이 줄줄이 들어서고, 삼성·LG·SK의 배터리 공장도 주로 남부에서 건설되고 있다.
그야말로 미국의 산업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남북전쟁 때 끝없이 펼쳐지던 면화 밭이 이제는 첨단 제조업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성대한 부활이다. FT는 “중국과의 공급망 디커플링이 계속되면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이 쇄도하면서 한때 굴뚝 산업으로 외면됐던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했다. 미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상징됐던 미국 경제가 이제는 전통 제조업의 파워까지 겸비하게 된 것이다.
북부에선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해고됐던 인력이 되돌아오면서다. 남부에는 첨단공장이 들어서면서 협력업체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9월에는 전달보다 올라갔을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의 실업률이 오히려 3.7%에서 3.5%로 떨어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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