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인사이트] 미·중 경쟁 속 대만, 홍콩의 전철 밟을까

2022. 11. 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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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당 대회 이후 중국 대외정책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대만 영화 중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의 1989년작 ‘비정성시(悲情城市)’다. 강자들의 쟁투(爭鬪)로 인해 농아인 주인공은 궁극적인 비극의 현실을 말없이 감내해야 한다. 약자의 아픔과 슬픔이 한국 현대사와 겹치며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9년 중국에선 ‘건국대업(建國大業)’, 30년 후인 2019년엔 ‘나와 나의 조국(我和我的祖國)’과 같은 애국주의 영화가 나와 대륙을 휩쓸고 있다. 그런 추세 속에서도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선 중국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隱入塵煙)’가 경쟁 부분 후보작에 올라 관심을 모았다. 장애를 가졌지만 성실하고 정직했던 중국 한 빈농 부부의 고된 삶과 슬픈 결말을 그린 작품이다.

「 바이든의 전방위 중국 압박에
‘안보 강화’ 91차례 외친 시진핑
2027년 4연임 도전에 나설 경우
대만 통일은 중요 정치적 명분 돼

바로 이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베이징에선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됐다. 20차 당 대회는 노쇠해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불참과 무력해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중도 퇴장을 통해 이젠 중국에서 견제할 수 없게 된 시진핑(習近平) 1인 지배체제의 시작을 전 세계에 알렸다.

치솟는 중국의 안보 우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은 지난달 16일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주석이 이번 20차 당 대회 ‘보고(報告)’에서 국가안보(安全) 29번을 포함해 인민, 경제, 식량 등 각종 안보를 무려 91차례나 거론한 점은 의외였다.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33차례, 관심을 끈 공동부유가 8번 언급된 것과 비교할 때 중국 지도부가 느끼는 안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짐작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안보 우려를 강조했나.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며 미국의 다양한 대중 압박이 한층 강도가 커진 게 그 주요 원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 군사·안보적 연계가 강화되는 움직임은 중국에 큰 우려를 안기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은 유럽에선 NATO를 중심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아시아에서는 인태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한다. 한데 최근엔 NATO의 주요국들마저 인태 관련 전략 문서를 발표하며 이 지역에 대한 관여 의지를 구체화해 중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표 참조)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독일과 네덜란드의 해군 군함들도 인태 지역에서 미국과 연합훈련 및 군사 활동을 펼쳤다. 2021년 9월엔 미·영·호 동맹(AUKUS)이 수립됐으며, 2022년 6월에는 NATO 정상회의에 A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초청됐다.

미국은 이에 더해 EU와는 ‘무역·기술협의회(TTC)’를, 인태와는 ‘인태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체결하고 동시에 글로벌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 견제 내지 ‘탈(脫)중국’을 추구 중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미국의 압박에 중국의 안보 우려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미 분투 외치는 시진핑

시진핑 주석의 대미 대결 의지도 만만치 않다. 시 주석은 당 대회 ‘보고’에서 분투(奮鬪)를 무려 28차례나 언급했다. 또 인민해방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 강화 의사를 밝혔다. 대만 통일과 관련해선 무력 수단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천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 주석은 3연임 확정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군대 영도(領導) 간부회의’에 참석해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의 달성을 강조했다. 중국이 맞닥뜨린 군사·안보적 우려와 대만 통일을 위한 군사력 증강의 절실성에 대한 시 주석의 강한 의지를 확인해주는 대목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중 갈등은 한층 더 깊어지고 대만 해협의 파고 또한 더욱 거세게 출렁일 전망이다. 미국이 경제 및 군사·안보적 압박을 가할수록 시 주석의 분투 의지 또한 강화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또 대만 통일 목표는 시 주석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사안이라 양보가 불가능하다.

중국은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진영화 구도에 대응해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시 주석은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이 보다 빠르게 이뤄지도록 돕고, 국제사회에서 그 발언권이 커지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 주도의 TTC와 IPEF에 대응해 자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회원국 확대를 모색 중이다.

긴장과 불안의 대만 해협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 ‘보고’에서 대만 통일과 관련해 무력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 말에 과연 어느 정도 무게를 둬야 하나. 중국이 미국의 개입과 대만 내부의 저항을 물리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이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걸 천명했다기보다는 중국의 주권과 통일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강경한 정치적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하는 목적이 우선됐으리라 생각된다.

시 주석이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에 4연임에 도전한다면 대만 통일은 중요한 정치적 명분이 된다. 또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은 건군 100주년에 맞춰 대만 통일이 가능한 군사력의 증강을 추구해왔다.

20차 당 대회에서 대만을 관장하는 동부전구 사령관 허웨이둥(何衛東)을 당중앙 군사위원회 위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군사위 제2부주석으로 발탁한 건 시 주석의 대만 통일 목표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데 미국 또한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2027년까지 대만 해협의 긴장과 불안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비정성시’의 주인공 량차오웨이(梁朝偉)는 홍콩 반환과 세기말적 홍콩인들의 불안을 투영한 왕자웨이(王家偉) 감독의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에도 출연했다. 영화에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끝나기 2분 전에 등장해 외출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왕 감독은 그를 속편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엔딩 장면을 찍었으나 흥행실패로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속편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홍콩의 대륙화가 강경하게 진행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의 눈으로 홍콩을 그리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만의 미래 세대는 2027년 전후 대만의 모습을 과연 누구의 눈으로 그려낼까.

■ 가치·국익 기반 외교하되 한·중 국민 갈등도 관리해야

「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로 한·중 관계의 도전 요인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우선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견지돼온 한·중 관계의 기본 틀인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한·중 관계의 협력과 발전 증진 추구’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치 및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은 국민과 합의된 가치, 정체성, 국익에 대한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자외교에서는 한국의 가치와 국익에 관련된 입장을 이전보다 조금 더 명확하게 중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한·중 양자 관계에선 절제된 용어와 메시지를 통해 양국 간 도전 요인을 관리하는 외교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또 한·미 동맹의 공고화는 필수이지만 그 공고화가 미·중 사이에서 미국을 선택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아야 한다. 아직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가치와 국익에 따른 현안별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첨단기술에 관한 한국의 경쟁력 확보가 절박한 상황이며, 한국의 첨단기술과 인력이 쉽게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법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한·중 FTA 후속 협상과 더불어 양국 사이의 경제 협력 확대, 도전 요인의 관리, 안정적인 산업 공급망 유지를 정례적으로 논의할 한·중 경제 협의체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미국 주도의 ‘신뢰가치사슬(TVC)’ 안착이 선행돼야 하지만 조속한 ‘탈중국’보다는 산업 공급망 안정을 위한 ‘China+1’ 중심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한·중과 같이 가치와 체제가 다른 국가 사이에는 국민 간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 나아가 민족주의적인 반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기에 따라 단기적인 양국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적이고 정례적인 청년 세대 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가치와 체제가 다른 양국이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력을 만들어 나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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