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태원 사고 트라우마 슬기롭게 대처하자

2022. 11. 2. 0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0월의 마지막 주말 서울 시내에서 어처구니없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용산의 비좁은 뒷골목 길에서 156명(14개국 외국인 26명 포함)이 숨졌는데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3년이나 계속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친구들조차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했고 각자 외로움과 고립감을 견뎌왔을 것이다.

일부 중·고생을 포함해 대부분 10~30대 청춘들은 오랜만에 해방의 기쁨을 누리려고 핼러윈 축제에 참여했다. 그런데 우발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압사 사고로 큰 희생자가 발생해 많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유가족들의 충격과 슬픔은 감히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다. 유가족과 더불어 참혹한 상황에서 살아난 생존자들도 한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즉, 트라우마 증상으로 불안·공포·우울·무력감·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생겨날 수 있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목격하고 받은 충격으로 인해 해리 증상, 죽음에 대한 반복적 기억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자신만이 살아 있다는 생각, 좀 더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극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주위 사람들은 시간을 두고 생존자들이 트라우마나 죄책감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자.

「 대규모 사망 사고 발생 뒤에는
불안·공포·우울 증상에 시달려
희생자 추모, 아픔 함께할 때

이태원역 1번출구. 장세정 기자

유가족 및 생존자 외에 일반 대중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 이미 사고 현장에서 찍은 영상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고 있어 이를 시청한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건이 반복적으로 생각나 통제가 어렵거나,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무감각해진 경우라면 트라우마 센터를 찾거나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것을 권한다.

사건과 관계된 것이 아니더라도 잠들거나 집중하기가 어렵다거나, 쉽게 놀란다거나, 분노가 쉽게 표출되는 증상 등도 PTSD 증상이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천천히 심호흡하거나, 복식호흡 또는 명상을 하면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앞다퉈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정보를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으나 언론은 자극적인 뉴스나 사진 및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충격적인 모습들이 들어 있는 사진이나 자료는 생존자나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 댓글에서 보듯 무분별한 혐오 표현이나 루머 양산도 자제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온라인을 통해 배포하다 보면 그것이 실제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져 또 다른 거짓 뉴스가 될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2차 가해와 상처가 될 수 있다. 대규모 안전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꾼들,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도 자중해야 한다. 지금은 충격과 트라우마를 받은 우리의 이웃을 조용히 지지하며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할 때다.

이번 사고를 되돌아보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예방이 가능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다만 이번 같은 대형 압사 사고가 없었으니 골목길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날 것이라 예측하긴 쉽지 않았을 수 있다. 행사 주최자가 따로 없는 상황이어서 관할 경찰서와 구청에서도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명백히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확인되지 않는 시점에서 섣불리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먼저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 자신 및 지인들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이후에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국회·학계 등의 지혜를 모아 제시해야 한다.

이웃 나라 일본도 20년 전 불꽃 축제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를 계기로 안전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대대적인 법률 개정까지 했다고 한다. 이번 같은 참혹한 안전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