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최일헌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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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최일헌씨가 1일 별세했다.
그는 출소 후 줄곧 대전에서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교류하며 생활해왔다.
지난 2000년 대전에서 거주하던 김명수, 김용수, 최선묵, 최수일, 한장호, 함세환 등 6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으로 송환됐다.
하지만 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인 고인마저 이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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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최일헌 씨가 1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
ⓒ 양심수후원회 |
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 최일헌씨가 1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대전지역 인권단체인 '양심과 인권 나무'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후 지역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28년 만주 길림성 훈춘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년기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2차세계대전에 참여했고 중국 내전 때는 모택동 군대를 따라 양쯔강 전선을 오가야 했다. 이후 6.25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1960년 남파됐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그는 출소 후 줄곧 대전에서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교류하며 생활해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00년 8월 고향인 북한으로 송환되지 못했다. 고문과 폭력에 의한 강요된 전향이었지만 전향을 문제 삼아 송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때부터 그는 줄곧 2차 북한 송환을 신청하고 이제나 저제나 가족들이 있는 북으로 가기를 희망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인이 북한을 떠나올 당시 젖먹이 아들과 뱃 속에 아이들 두고 있었다.
고인은 지난 8월 양심수후원회와 만남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은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라며 "북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던 고인의 빈소는 대전 한국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3일이다.
지난 2000년 대전에서 거주하던 김명수, 김용수, 최선묵, 최수일, 한장호, 함세환 등 6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으로 송환됐다. 송환을 희망했지만 제외된 고인 등 대전 거주 4명(최일헌, 이창근, 민범식, 허찬형)도 송환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대전 거주 마지막 비전향장기수인 고인마저 이날 숨졌다. 양심수후원회에 따르면 생존 비전향장기수는 8명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9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 추진 여부에 대해 "지난 2000년 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한 이후 이 문제는 종료된 사안"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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