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우리동네 자연이 보물이었네”… 제주 ‘마을 생태교육’이 뜬다
“이거 그때 배웠던 ‘두이빨사각게’가 맞죠?” “네, 맞아요. 담수가 유입되는 해안가에 주로 사는데, 우리나라에선 제주해역에서만 관찰되는 보호종이에요.” “이름처럼 몸통이 사각형이에요. 여기 게의 먹이인 구멍갈파래가 있어요. 이렇게 귀한 게를 볼 수 있는 건 우리 마을에 용천수가 많기 때문인 거죠?”
제주 공항에서 동쪽으로 12㎞가량 떨어진 조천초등학교. 복도 창문을 열어 아래로 손을 뻗으면 바닷물을 만질 수 있을 것처럼 포구 가까이 자리한 이 학교 학생들이 요즘 마을 용천수 터를 자주 찾는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용천수 지킴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용천수를 주제로 다채로운 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을 선생님들과 맑은 물이 샘솟는 용천수 터에서 염도를 측정하고, 용출량을 잰다. 용천수마다 각기 달랐던 물의 쓰임을 배우고,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생김새와 이름도 익힌다. 수업의 마지막엔 용천수를 오래 보전하기 위해 주변 쓰레기를 줍는 일도 잊지 않는다. 고사리손마다 목장갑을 끼고 휴대용 돋보기를 목에 건 모습은 주민들에겐 익숙하고도 고마운 풍경이다.
제주에서 지역성을 활용한 생태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 생태교육은 마을의 자원을 이용하거나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주민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기존 생태교육이 텃밭에 고구마를 심어 농작물의 생장을 지켜보는 정도였다면, 마을 생태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가치를 고민하도록 이끈다. 기후위기 시대 환경 감수성이 교육 현장의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마을 생태교육이 점차 화두가 되고 있다.
마을 생태교육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장소에서부터 교육 범위를 점차 넓혀가기 때문에 수업 집중도가 높다. 조천초 학생들에게도 용천수는 익숙한 소재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용천수가 있음을 알리는 팻말을 일상적으로 봐왔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도 집 옆 용천수가 먹는 물로 이용됐는지, 빨래하는 곳으로 사용됐는지는 생태수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다. 아이들은 더 나아가 제주에 물이 귀했고, 물이 귀한 이유가 구멍이 큰 화산섬의 지질적 특성 때문이라는 사실도 배운다.
용천수를 배우면서 마을에 대한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도 함께 커간다. 마을 삼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용천수 지킴이 모임을 구성해 매주 공부하고 다시 배운 내용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를 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천리는 지킴이 수를 늘려 학생 교육을 앞으로 계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19일 서귀포 하례초등학교에선 전교생이 다같이 교문을 나섰다. 1~2학년은 서걸세오름으로, 3~4학년은 할망당이 있는 마을 안길로, 5~6학년은 마을포구로 각기 향했다.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생태탐험대 활동이 있었던 날, 아이들은 가을이 무르익는 오름에서 도토리 열매를 먹는 동물과 새에 대해 배우고, 마을에 많은 나무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았다. 포구에선 플라스틱 쓰레기가 증가하는 문제에 관해 심각성을 공유하고 실천 방안을 찾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례초는 2017년부터 생태교육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교생이 마을 명소를 찾아 제주의 자연과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종을 탐구한다. 새들이 있는 숲속에서 악기 연주회를 열고. 자연의 소리를 칼림바나 오카리나 등의 악기로 표현해보기도 한다.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실천 주제를 찾고 실행하는 경험도 생태교육의 중요한 수업 목표다. 현장 탐방에는 마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한다. 교사들도 전문 학습공동체를 구성해 마을 생태자원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하례초가 주민 지지와 도움으로 마을 생태교육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자체가 소중한 자연유산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라산 백록담 남쪽 고지대에서 발원해 서귀포 바다까지 13㎞에 이르는 효돈천은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생태 명소다. 기암절벽을 따라 이어진 내창과 옛 목장길을 복원해 만든 고살리 숲길 등도 트레킹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옛 포구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망장포, 효돈천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 생긴 쇠소깍, 수악오름 등도 제주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생태자원들이다. 여기에 전교생이 60명 안팎인 작은 학교라는 점도 생태교육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큰 효과는 아이들 한명한명의 만족도가 크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척 즐거워한다. 오감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은 오래 기억되고, 교육과정에선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이 쑥쑥 자라난다. 하례초는 2017년 이후 일반 건강생태학교로 운영되어 온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제주형 자율학교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돼 더 많은 예산으로 더욱 다채로운 교육과정을 꾸릴 수 있게 됐다.
강혜란 하례초 교장은 “우리 학교는 지역사회 인프라를 활용해 다양한 생태 배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아이들은 동떨어진 자연이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매일 마주하는 자연을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 동쪽엔 생태교육이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된 학교도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에 있는 선흘초등학교다. 2014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20명에 불과해 폐교 논의까지 나왔지만, 학교와 마을, 제주도교육청이 마을의 자산인 동백동산을 기반으로 건강생태교육을 추진하면서 학생 수가 크게 늘었다.
동백동산은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으로 불리지만, 실제 동산에는 종가시나무나 후박나무, 비쭈기나무 등 난대성 수종이 함께 자란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의 난대상록수림이다. 선흘 곶자왈과 습지가 함께 있고 그 안에 많은 희소한 생물종이 서식해 2011년엔 람사르 습지로, 2014년엔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로 지정됐다.
선흘초는 동백동산의 서쪽 입구 가까이 자리해 있다. 학교 옆 동백동산은 아이들이 생태를 접하는 가장 좋은 교육 장소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식물이 좋아하는 흙은 어떤 느낌인지 만져보고, 봄에는 개구리와 도롱뇽의 한살이 과정을 관찰한다. 동백동산에 사는 모든 서식 생물이 학습 소재다.
선흘초의 생태교육은 동백동산 습지센터 강사와 담임 교사가 함께 꾸리는 협력수업으로 진행된다. 선흘리가 생태마을로 지정되면서 동백동산습지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선흘곶, 환경친화적 대안학교 등 생태교육 인프라가 구축돼 생태교육을 실천하기 적합한 주변 여건이 형성됐다.
건강생태학교 지정 7년 차에 접어들면서 생태교육프로그램이 탄탄히 갖춰지고, 마을교육공동체와 협력이 강화되면서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선흘초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전교생은 90명을 넘어섰다. 교육청은 올해 3월 1일자로 함덕초 선흘분교를 본교로 승격했다. 지난 9월 승격식에선 학교 선배이기도 한 동네 주민들이 선흘초의 세 번째 승격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제주에서 처음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됐던 선흘초는 올해 승격과 함께 제주형자율학교 건강생태학교로 지정돼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됐다.
강정림 선흘초 교장은 “걸어서 5분이면 세계가 가치를 인정한 마을의 보물 동백동산에 도착한다”며 “선흘의 아이들은 동백동산과 더불어 공존의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따뜻한 어린이로 자라 제주의 자연을 지켜나가는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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