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혹한기 맞은 카드·캐피탈사…기관 외면에 '개미'에 러브콜
NH농협캐피탈은 지난달 300억 원어치 회사채를 연 6.64% 금리에 발행했다. 이자를 매달 지급하겠다는 조건(월 이표채)을 내걸고서야 간신히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다. 신한캐피탈과 현대캐피탈 등 다른 캐피탈사도 월 이자 지급 조건으로 각각 400억원, 100억 원어치의 채권을 발행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5~6%에 달하는 데도 매월 이자를 준다는 것은 여신전문금융사채권(여전채)에선 보기 드문 조건”이라며 “기관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다 보니 개인에게라도 팔기 위해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 가뭄’을 겪는 여신전문금융사(여전사)가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섰다. 고금리에 짧은 만기, 월 지급식 이자 등 투자자에 유리한 조건을 내걸며 개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큰 손’인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전력공사 등 신용등급 최상위 등급(AAA) 공기업들이 쏟아내는 채권에 쏠린 탓이다.
1일 중앙일보가 하나·신한·한국·키움·KB·NH 등 6대 대형 증권사의 지난 1년 간(지난해 11월 초~올해 10월 말) ‘개인 매수액 상위 10위 채권’을 조사한 결과, 여전채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매수세가 많이 몰린 여전채는 엠캐피탈(5093억원)·오케이캐피탈(4513억원)·키움캐피탈(1900억원)·롯데카드(1799억원)·현대카드(1743억원) 순이었다. 이 밖에 한국캐피탈·KB국민카드·우리카드·삼성카드·BC카드·하나카드·현대캐피탈 등도 많이 사들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개인은 4조8000억원어치의 여전채를 사들였다. 국채·회사채 등을 포함해 개인이 사들인 전체 채권 순매수액(16조7000억원)의 28%를 차지한다. 이 비중은 1년 사이 급격히 증가했다.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개인의 여전채 순매수 비중은 6%에 불과했다.
‘개미’ 투자자들이 여전채에 뛰어드는 이유는 금리 매력 때문이다. KB캐피탈은 1일 500억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며 연 7.68% 금리를 제시했다. BNK캐피탈·우리금융캐피탈 등도 지난달 말 7% 이상의 금리를 내걸었다. 여기에 월 이자 지급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사례도 증가 추세다. 채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월 지급식 이자 조건은 캐피탈·카드사를 통틀어 5건에 불과했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44건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기관은 금리 상승기를 맞아 채권 투자에 몸을 사리고 있다. 낮은 금리의 채권을 샀다가 높은 금리를 주는 채권이 발행되면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채권파트장은 “금리가 올라 채권가격이 떨어지면 기관투자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평가손실을 보게 된다”며 “이에 비해 개인들은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이자 수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 채권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자 몰린 여전사들의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는 점이다. 긴축 정책에 취약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저신용자 대출 자산이 많기 때문이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18개 캐피탈사의 올해 3월 말 기준 부동산 개발 관련 위험노출액은 23조6000억원이다. 이중 내년 6월 말 이전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가 40%가 넘는다. 자산 부실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자금 조달마저 막히면 취약한 여전사들의 도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여전사들 가운데 최근 수년간 자산이 너무 가파르게 성장한 회사는 투자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 매력만 볼 게 아니라 재무 여력도 함께 살펴야 투자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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