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지자체도 "내 탓 아니다"…볼썽사나운 책임 전가 경쟁

나운채, 김남영 2022. 11. 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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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근 경찰청장이 “무한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 1일 ‘이태원 참사’ 책임소재를 둘러싼 용산구청과 경찰, 서울교통공사 사이의 장외 핑퐁 게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전날까지는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할로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박희영 용산구청장) “주최 측이 없는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관련 매뉴얼은 없다”(경찰관계자 브리핑) 는 등 책임 면피를 위한 공동전선을 펴던 기관들이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양상이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 이미 대형사고가 조짐이 관측됐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생긴 일이다.

지난달 29일 시민 인명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골목길에서 1일 경찰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참사 전인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은 이태원 핼러윈 행사 관련 보행자 도로 난입 및 교통난으로 인한 사고 우려 등을 담은 보고서를 서울경찰청에 제출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용산서 종합치안대책에 반영됐단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사고 당일엔 “사람이 깔렸다”는 사고 발생 신고가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처음 접수된 시간(오후 10시 15분)보다 약 4시간 전부터 112에 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신고가 다수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6시 34분쯤 “사람들이 엉켜서 잘못하다 압사(壓死)당할 것 같다”는 신고를 시작으로 오후 10시 11분까지 11건의 112신고가 접수됐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었다.

경찰 일각에선 이태원 관할지자체인 용산구청에 일차적 책임을 돌리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일선서의 한 경찰 관계자는 “법상 재난 관리의 일차적 책임기관은 지자체다”며 “지자체가 경찰이 행정지원 요청을 먼저 하는 게 기본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31일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MBC 인터뷰에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며 “작년보다는 (인파가) 많을 거라곤 예측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많을 거라고는(예측 못 했다)”고 말했다.

볼썽사나운 책임공방은 서울교통공사와 경찰 사이에서도 이틀째 계속됐다. 사고 당일 이태원역 무정차 요청 여부를 둘러싸고 진실게임 양상마저 모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태원역 측에 ‘다중 운집 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단 게 경찰 입장이다. 그러나 서교공 측은 “사고 전 (경찰) 요청은 없었다”며 반박했다. 양측은 상호간 시간대별 통화 내역까지 거론하면서 맞서는 중이다. ‘이태원 지역상인 측이 핼러윈 기간 경찰 통제를 자제해 달라고 했다’는 경찰 일각의 주장까지 나오자 이번엔 상인회 관계자가 “사실이 아니다”며 발끈하는 일도 벌어졌다.

1일 본지 보도로 해밀톤 호텔의 불법 건축으로 4m 이상이어야 하는 골목의 한 구간이 3.2m까지 좁혀져 병목현상이 생기는 원인이 됐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책임 소재 논란은 호텔과 경찰 사이에도 불붙을 조짐이다. 호텔 측은 “10여년 전 문제의 구조물이 설치됐고, (구청) 단속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은 “위법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유실물센터를 찾은 시민이 1일 오후 현장에서 수거한 신발과 옷 등 유실물 중에서 분실물을 찾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상조 기자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각 기관들의 책임 전가 경쟁은 “주최가 없는 자발적 모임”논리로 시작됐다. 용산구청과 경찰 등은 모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66조의11를 거론하며 이태원 일대서 열린 여러 핼러윈 행사는에 비춰 지자체·경찰 등의 안전관리계획 수립·시행 대상인 지역축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경찰의 경우 재난안전법 외에도 도로 위험 방지 및 안전 확보를 위한 통행금지·제한 조치 등을 할 수 있는 도로교통법과 극도의 혼잡 상황에서 위험 예방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만으로도 충분한 개입의 근거가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개혁위원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주최가 없으면 더욱 경찰이나 지자체의 책임이 커지는 게 상식”이라며 “군중이 밀집하면 사고발생 가능성이 커지므로 이를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가 역시 상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고 당일 13만명의 인파가 이태원 일대로 몰렸지만, 경찰 투입 인력은 137명이었고 이 마저도 안전 관리보단 주취 및 마약 단속이 주된 역할이었다. 사고 현장 바로 길건너 경찰 이태원 지구대가 있다. 한 인터넷 방송 BJ는 참사 발생 약 한시간 전인 오후 9시 16분쯤 이태원 지구대를 찾아가 “사고가 날 것 같다”고 말했지만 경찰관으로부터 “저희도 지금 거기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반응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용산구청도 사고 당일 구청 관계자 30여명만 현장에 배치했다. 지난달 15일~16일 같은 위치(이태원)에서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 땐 1000여명의 구청 직원이 투입한 것과 대비되는 숫자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보이는 해밀턴호텔 주점 테라스(왼쪽)의 모습. 연합뉴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기관의 태도는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고 트라우마를 더욱 키우기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돌발사고 가능성이 충분히 예측됐던 만큼 지자체나 경찰이 적극 통제에 나섰다면 사고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며 “법 조항만을 얘기할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로 사고를 수습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게 맞는 자세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나운채·김남영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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