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꿈 이룬 ‘은마 효과’는? 재건축 물꼬 텄나…‘대치동 축배’엔 역부족
# “불과 발표 며칠 전만 해도 전셋값, 아파트값이 떨어진대서 집이 안 팔릴까 걱정하는 집주인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집주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며 매물을 거둬들이네요. 이 매물들이 다시 나오면 기존 호가에 최소 1억~2억원은 더 붙어서 나오지 않을까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거래가 좀 늘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은마 호재 하나만 갖고 수요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어서겠죠. 첫 사나흘은 문의가 반짝 늘더니 오늘부터는 다시 잠잠하네요. 사실 수많은 재건축 단계 중 하나 통과했다고 없던 매물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대치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지난 10월 25일 찾은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난 10월 20일 정비계획안 심의에 통과하면서 단지 정문을 비롯해 곳곳에는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인근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찾아오는 손님 모두 ‘앞으로 얼마나 걸리겠느냐’는 질문은 공통적이란다. 하지만 실제 매수로는 이어지지는 않는데, 막상 와보니 가격이 여전히 높다며 눈치만 보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의 상징으로 꼽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조합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를 설립한 지 19년 만에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하면서 대치동 일대가 들썩인다. 노후 단지가 주를 이루는 대치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면 최근 주춤했던 집값이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기대감이 시세 반등으로 이어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19일 제11차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를 열고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정비계획안이 도계위에 상정된 지 5년 만이자,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한 지 정확히 19년 만에 재건축 심의안이 통과됐다.
이번 서울시 결정으로 은마아파트는 현재 14층, 28개동, 4424가구인 단지를 최고 35층, 33개동, 5778가구로 재건축할 수 있게 됐다. 건폐율 50% 이하, 상한 용적률은 250% 이하가 적용된다. 재건축 후 들어서는 5778가구 중 678가구는 소형 임대주택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단지 내 근린공원, 문화공원, 공공청사도 들어선다.
추진위는 조합설립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했고, 조합설립인가 이후 내년 중 49층으로 재건축 계획 변경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추진위는 조합원 동의를 서둘러 이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조합설립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심의 통과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은마아파트가 재건축을 위한 추진위를 설립한 건 2003년. 재건축 사업 첫 관문인 안전진단에서부터 세 차례나 고배를 마셨고 2010년 3월, ‘4수’ 만에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다. 2017년 8월에는 최고 49층으로 재건축하는 안을 서울시에 제출했지만 서울시가 35층으로 제한을 두면서 심의 통과가 무산됐다.
재건축 절차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주민 간 갈등도 커졌다. 소유주 사이에서 ‘35층 이하로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쪽과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쪽으로 나눠 대립했다. 이후 주민을 대표하는 비대위가 여러 개로 쪼개졌고, 결론 안 나는 소송전이 이어지더니, 결국 지난해 9월 주민총회에서 지도부 전체가 해임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그러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며 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았고, 이번에 심의를 통과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당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3월 은마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새롭게 결성되면서 재건축 사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추진위는 35층 층고 제한이 풀리기 전 지난 2월 35층으로 조성한다는 정비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대치동 일대 재건축 단지들 ‘들썩’
▷우선미·구마을·현대 정비사업 박차
어쨌든 서울시가 오랜 기간 답보 상태였던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을 전격 통과시키자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여 있던 대치동 일대는 오랜만의 호재를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간 은마아파트가 각종 규제에 가로막혔던 재건축의 상징이었던 만큼, 이번 계획안 통과 이후 다른 재건축 단지 사업에도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다. 일명 ‘우선미(개포우성·선경·미도)’로 불리는 대치동 대표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태다.
그중 대치미도는 지난해 신속통합기획을 신청하며 강남권 신통기획 1호 단지가 됐다. 은마아파트 남쪽에 위치한 대치 미도는 양재천 방면으로 최고 49층 높이 재건축을 추진하는 중이다. 대치동 D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대치동 재건축의 상징이던 은마 사업이 지체돼 소유주들이 답답해했다”며 “(대치미도 재건축이 은마와) 비슷한 속도로 진행된다면 차후 신축 아파트가 입주할 때 시너지가 톡톡할 것으로 기대하는 집주인이 많다”고 전했다.
선경3차는 지난해 12월 현대건설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시공자로 선정했으며 선경1·2차는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치우성1차는 시공사 선정을 마친 쌍용2차와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쌍용1차와 통합해 재건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밖에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대치1차현대는 최근 2차 안전성 검토를 통과했다.
‘디에이치 에델루이’로 신축되는 구마을3지구는 12월 일반분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마을3지구 조합은 최근 일반분양가 산정·심의 협력업체 선정에 나선 데 이어 조합원 동호수 추첨·발표를 마쳤다. 이 단지는 지하 3층~지상 16층, 282가구 규모로 크지는 않은데 이 가운데 79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이다. 앞서 구마을1지구는 재건축 아파트(대치푸르지오써밋, 489가구)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년 입주 예정이다. 지난해는 ‘르엘대치’로 신축된 구마을2지구가 입주를 마쳤다. 구마을1·2·3지구를 합하면 약 1000가구 규모 신축 주거지가 들어서는 셈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기존 대치동 아파트값은 ‘급락’할 거라던 우려와 다르게 굳건하다. 대치동 대장 단지 중 하나인 ‘래미안대치팰리스1단지’ 전용 84㎡는 저층 33억원~로열층 35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같은 평형이 지난 4월 33억원(14층)에 마지막으로 실거래된 이후로 호가가 조금 더 올랐다. 은마아파트는 전용 76㎡가 직전 거래(24억8000만원)보다 3억원 이상 빠진 21억4000만원(13층)에 계약서를 썼고, 저층 매물 호가는 한때 19억원까지 내려앉아 있기는 하다. 다만 아직 매물 업데이트가 안 됐을 뿐 앞으로는 20억원 아래 매물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일대 중개업계 중론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재건축 시장 불씨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전진단 규제 등 규제가 여전한 데다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도 계속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당분간, 재건축 심의 통과만으로 대치동 전체 재건축 사업이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앞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일단은 매물을 거둬들였어도 이전에도 거래가 전무했던 터라 더 높은 가격에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며 “지금 호가를 올리면 더 팔리지 않을 거라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