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권 신호? 반등 노린 ‘레버리지’ 상품 봇물
직장인 서기원 씨는 올해 지수 하락에 베팅해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적지 않은 돈을 넣은 것. 심지어 하락폭의 2배로 수익을 내는, 이른바 ‘곱버스’에 투자해 수익폭을 키웠다. 인버스는 기초지수가 하락할 때 수익이 나는 구조다. 곱버스는 ‘인버스’ 가격 변동폭의 2배로 움직이는 상품을 말한다.
서 씨의 성공 사례는 통계로 입증된다. 최근 6개월간(4월 26일~10월 26일) ETF 수익률 상위 20개 종목 중 10개가 인버스 또는 곱버스 펀드였다. 상위 10개로 좁혀보면 6개 종목이 곱버스 ETF다.
최근 6개월 동안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 1, 2위는 ‘SOL 차이나태양광CSI(합성)’와 ‘KODEX 미국S&P에너지(합성)’로 40%, 35%대 수익을 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중국 태양광 기업과 미국 에너지 기업 주가가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위부터는 ‘곱버스’ 세상이다. ‘ARIRANG 200선물인버스2X’ ‘KBSTAR 200선물인버스2X’ ‘KOSEF 200선물인버스2X’ ‘TIGER 200선물인버스2X’ ‘KODEX 200선물인버스2X’ 등이 3~7위를 휩쓸었다. 수익률은 대체로 32%대다. 6개월간 코스피 하락폭의 2배만큼 수익을 낸 셈이다.
특히 ‘KODEX 200선물인버스2X’의 거래대금은 100조원에 달한다. 지난 3년간 거래대금 1위이자 코스피200지수를 2배로 따르는 ‘KODEX 레버리지(78조4909억원)’를 앞섰다. 시장 참여자들이 그만큼 지수 하락 가능성을 높게 봤고, 실제 수익을 냈다는 의미다.
반대로 수익률 최하위의 불명예는 지수 상승분의 2배 수익을 내도록 설계된 레버리지 상품이 차지했다. 최근 6개월간 수익률은 ‘ACE 베트남VN30선물블룸버그레버리지(H)’가 마이너스(-) 57%로 하락률 1위였다. 이 상품은 베트남 증시의 2배 수익률을 추구한다. 또 ‘TIGER KRX BBIG K-뉴딜레버리지(-44%)’ ‘KODEX 차이나H레버리지(H)(-43%)’ 등도 수익률이 낮다.
▶곱버스 투자자 수익률 쏠쏠
▷최근 레버리지 상품 잇따라 출시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지수 상승에 무게를 둔 ‘레버리지’ 상품으로 자금이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이다. ‘KODEX 레버리지’의 최근 한 달(9월 26일~10월 26일) 거래대금 규모는 9조5343억원이다. ‘KODEX 200선물인버스2X(16조2469억원)’에 이어 2위다. 코스피200지수에 투자하는 ‘KODEX 200(5조3037억원)’도 거래대금 순위 4위를 기록했다.
증권사도 레버리지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 10월 17~21일 한 주에만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 38개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됐다. 레버리지 ETN으로는 지난 7월 이후 3개월 만의 상장이었다. 시장에서는 지수가 바닥권에 진입했다고 보고 반등에 무게를 둔 상품 구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TF도 신규 상장이 이어졌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10월 25일 ‘KOSEF 차이나A50커넥트레버리지MSCI(합성H)’ ‘KOSEF 차이나A50커넥트인버스MSCI(합성 H)’ ETF를 신규 상장시키기도 했다.
신규 ETN 38개를 종류별로 보면 천연가스 선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이 16개, 코스닥 150 선물을 추종하는 상품이 14개, 코스피 200 선물을 추종하는 상품이 8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에너지 상승에 무게를 둔 레버리지 상품이 주류다. 또한 코스닥과 코스피 반등에 무게를 둔 코스닥 레버리지가 적잖이 나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대신 S&P 2X 천연가스 선물 ETN,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등은 15%대 수익를 냈다.
전문가들은 인버스·레버리지 ETF를 위험성이 큰 상품인 만큼 단기 매매 수단으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장 하락에서 상승으로 국면이 전환됐다고 단정 짓기 어려워서다. 원자재 상품 역시 방향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실제로 ‘고위험 고수익’ 레버리지 상품이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코스피에 상장된 KB증권 ‘KB 레버리지 항셍테크 선물 ETN(H)’은 10월 24일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된 데 이어 10월 25일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됐다.
해당 ETN은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대형 테크 기업 30종목으로 산출되는 항셍테크지수 선물의 일간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지난해 6월 2일에 상장해 2026년 만기 예정이었다. 전 거래일 장 종료 시점 당시 실시간 지표가치(iIV)가 1000 아래인 약 870원으로 떨어지며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했다. 중국 새 지도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측근들로 전면 배치되며 항셍지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정규 시장 종료 시점에서 ETN의 실시간 지표 가치가 전일 대비 80% 이상 하락하거나 1000원 미만인 경우 조기청산 사유를 충족한 것으로 본다.
비슷한 구조의 ‘삼성 레버리지 항셍테크 ETN(H)’도 불안했다. 다만 ETN의 전 거래일 장 종료 시점 실시간 지표 가치는 1000원보다 78.7원 높아 조기청산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전문가들은 “중국 체제 경직성과 미국과의 대립 격화로 외국인 이탈 우려가 커지며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내년 코스피 1900 전망도
▷레버리지 투자자 크게 손실 볼 수
국내 증시 역시 바닥권에 진입했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 현대차증권은 내년 코스피지수가 2050~2570포인트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반기로 접어들수록 주식이 상승하는 ‘계단식 우상향’ 전망이다. 고강도 긴축 종료와 실질금리 상방 압력이 줄어든다는 전제 아래 하반기 반등장을 점쳤다. 그러나 미·중 간 경제적·물리적 갈등과 이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지면 2000선까지도 밀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맥쿼리증권은 최근 발간된 한국 시장 보고서에서 12개월 코스피 목표치를 최저 1900으로 낮췄다. 상단은 2800에서 2600으로, 하단은 2100에서 1900으로 조정했다. 심리적 저항선인 2000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 이렇게 주가가 무너질 경우 레버리지 투자자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조준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레버리지 ETF는 하락장에서 하방에 대한 방어가 힘들다”며 “인버스 ETF는 방향을 맞추더라도 시점을 맞추지 못한다면 리스크 대비 ‘리턴’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버리지도 추세 전환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단기 트레이딩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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