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 돌아오지 못한 청춘…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마지막길
“착한 애인데, 같이 갔던 친구들 구하려다 그만...”
오스트리아·한국 이중국적인 김모(24)씨의 입관식이 시작되자마자, 굳게 닫힌 지하 1층 장례식장 입관실에서 통곡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입관실 바깥에 있던 김씨의 지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영정 사진 속 김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1일 오후 4시 30분 경기 고양시 동국대일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됐다. 김씨의 가족들은 운구차에 실린 김씨의 관을 쓰다듬으며 흐느꼈고, 어머니는 운구차에 실린 관에 머리를 대고 오열했다.
이날 오후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조문객은 “(김씨가) 친구들과 여럿이서 이태원에 같이 갔다가, 친구들이 인파에 깔려 위험해지자 이를 구해주려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며 “다리를 다친 친구도 있었으나, 같이 간 친구들은 모두 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문객은 “착하고 귀한 아들이었다. 외국인 친구가 빈소에 와서 자기 때문이라고 죄송하다며 울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부모의 이민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을 얻은 김씨는 “부모님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싶다”며 지난 9월부터 한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워왔다. 오는 7일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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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면 좋아” 이름 외친 유족들…오열·탄식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째 되는 이날, 빈소가 비교적 일찍 차려졌던 서울 지역 몇몇 장례식장에선 희생자들의 발인이 진행됐다. 유족과 지인은 통곡과 탄식 속에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있는 일부 장례식장에는 분향소가 차려져 의료진과 시민이 찾아와 헌화와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한림대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김모(27)씨의 발인식이 시작됐다. 6명의 친구가 관 운구를 위해 장갑을 끼는 동안 아버지는 빈소 앞에 앉아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가족들은 눈물을 연신 훔쳤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아버지는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너무 빨리 갔다. 훨훨 잘 날아가. 다음에 보자”라고 울먹였다. 어머니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고, 부축을 받아 겨우 이동했다.
오후 12시 50분쯤 또 다른 희생자 이모(24)씨의 유족들이 빈소에 모여앉아 기도문을 낭독하고 찬송가를 합창했다. 아버지는 기도문을 읽으며 “저를 데려가시지 그러셨습니까” “어린 아이들 보내는 거 말도 안 됩니다”라고 울부짖었고 어머니는 통곡했다. 사망한 이씨는 사고 당일 ‘놀러간다’며 아버지에 전화했고, ‘잘 놀고 와라’고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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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대다수는 ‘청춘’…유족들 “못 보낸다” 오열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대다수는 20대로 나타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오전 11시 기준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56명, 중상자는 29명, 경상자는 122명으로 부상자는 총 151명으로 집계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104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31명, 10대 12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다.
못다 핀 청춘이었던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는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음식이 놓였다. 이날 오전 서울삼육병원에 차려진 이모(26)씨 영정 앞에는 감자 과자 3봉지가 열린 채로 놓여있었다. 같은 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전직 치어리더 김모(25·여)씨 영정 앞엔 과자와 음료수가 여럿 놓였다. 김씨의 발인은 가족과 친구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첫날부터 고인의 빈소를 지킨 친구들이 끝까지 곁을 지켰다.
사고 당일 친구와 ‘참변’…눈물의 작별 인사
앞서 이날 오전 6시 30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장례식장에서는 최모(24)씨의 발인식이 열렸다. 최씨의 큰어머니는 “공부도 잘해서 강릉에서 서울로 대학을 갔다”며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당시 최씨와 함께 있었던 친구는 유족을 만나 거듭 눈물을 흘렸고 유족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취업한 지 2개월 차인 최씨는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방문했다가 인파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밤 늦게까지 최씨를 찾아다녔던 최씨의 오빠가 영정 사진을 들었고 가족과 친구들이 말없이 뒤를 따랐다.
함민정ㆍ전익진ㆍ이병준ㆍ심석용ㆍ김남영ㆍ최서인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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