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성폭력으로 여동생을 잃고, 오빠는 꿈을 접었다

정현환 2022. 11. 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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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오빠 이아무개씨

[정현환 기자]

"나의 몸이 더럽혀졌다. 모두 가해자 때문이다."

공군 군번 17-OOOOOO. 군 검사 창설 이래 최초로 이뤄진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건 관련 특검이 지난 9월 13일 100일간 이뤄져 온 조사를 마무리했다. 공군 상급자의 지속적인 성폭력과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중사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고인의 시신은 528일째(11월 1일 기준) 국군수도병원에 머물고 있고,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유족은 어떤 이유로 고인을 보내지 못하고 있을까. 그동안 이 중사 가족은 어떻게 버텼으며, 특검 이후 무엇을 준비 중일까. 공군에서 딸이자 여동생인 이 중사를 잃고 하루아침에 유족이 된 가족의 사연을 들어봤다. - 기자 말
  
 2021년 제20전투비행단 고(故) 이예람 중사는 현재 528일째(2022년 11월 1일 기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 정현환
 
고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10여 명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받거나 형량이 깎였다. 성폭력을 당한 망인에게 가해자인 장아무개 중사와의 합의를 종용하고 면담을 강요하는 등의 혐의를 받던 노아무개 상사는 수감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국방부 영내 수용시설에서 수감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였다.

유족과 시민사회, 정치권의 논의로 지난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법무법인 동인 소속의 사법연수원 25기 안미영 변호사를 이 사건의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29일 가해자 장아무개 중사에게 선고된 징역 7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안미영 특검은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준장) 등 8명을 기소하며 100일 동안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했다. 특검팀은 작년 국방부 자체 수사에서 불기소 처분했던 군 관계자들을 대거 재판에 회부했다. 특히 성폭력을 저지른 뒤에도 피해자와 분리되지 않았던 장아무개 중사는 부대를 돌아다니며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훼손하며 탄원서를 받으러 다녔는데, 이 부분은 특검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어 곧 재판을 다시 받게 될 예정이다.

2021년 5월 21일 고 이예람 중사가 사망하고 480일이 지나 이뤄진 결과다. 하지만 특검은 이 중사 사망 전후로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가 계속된 이유를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고 주요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확인됐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동시에 안미영 특검은 군을 수사한 최초의 특검으로서, 성폭력 피해자가 군의 폐쇄적 병영에서 어떻게 죽음에 내몰리는지 그 과정을 일부 규명했다. 더불어 군사경찰과 군검찰, 군사법원을 조속히 폐지하고 민간으로 이전해야 할 필요성을 거듭 확인시켰다. 이 상황을 유족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지난 10월 28일~29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이 중사의 오빠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동생인 고 이예람 중사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황은 어땠나?

"5월 22일 토요일 아침 8시 18분, '예람이가 잘못됐다'라는 어머니 비명소리를 들었다. 여동생은 바로 전날인 5월 21일 3년간 사귀었던 같은 공군 소속 남자 친구와 혼인했다. 이 소식을 매제가 어머니한테 전달했고, 이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동생한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그때 동생이 정말로 잘못됐음을 믿게 됐다. 그렇게 남양주 집에서 서산 공군 부대까지 2시간을 달렸다. 어머니는 차 뒤에서 거의 정신을 거의 잃은 채 계셨고, 아버지는 최대한 담담하게 계셨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예람이를 부검할 때, 완전히 무너지셨다. 전 살면서 시신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첫 시신이 바로 여동생 예람이었다. 차가운 발, 푸르스름한 피부를 보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도 밤에 잘 때 동생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고 이예람 중사의 오빠 이아무개씨
ⓒ 정현환
 
- 공군에서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은 어떤 성폭력과 2차 가해를 당했나?

"2019년과 2020년에도 동생은 군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여동생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다. 공군은 여동생이 성폭력에 시달리는 동안 계속 방치했다. 1차 성폭력을 겪었을 때도 적절한 조치를 안 했고, 전출된 부대에서 당시 군 지휘관들에게 2차 가해를 당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동생은 국방부 지침에 따라 신고했다. 그런데 공군은 끝까지 제 동생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았다.

피의자 장아무개 중사의 성폭력은 첫 부대인 20 비행단에서 발생했다. 여동생이 피해사실을 보고했음에도 해당 부대는 피의자와 전혀 분리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묵고 있던 남성 군인 숙소와 제 동생 숙소는 가까운 거리였고, 직업군인 특성상 업무와 동선이 겹치는데 군은 따로 분류해주지 않았다.

사실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있는 거랑 전혀 다름이 없었다. 엄연한 2차 가해다. 공군이 방치한 사이 피의자 장아무개 중사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같은 공군 부대 동료들에게 탄원서를 받았다. 전 이러한 공군 내부 분위기가 여동생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큰 압박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방부 성폭력 매뉴얼이 있으면 뭐하나. 실제로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 고 이예람 중사 관련, 그동안 국방부와 공군의 수사는 어떠했나?

"사건이 터지고 문재인 대통령을 총 2번 만났다. 한 번은 장례식장에 직접 와주셨고, 나머지 한 번은 서울 중구 명동성당 꼬스트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총 8번 만났다.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사에 속도가 붙고 군 관계자 처벌이 이뤄진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크게 바뀐 건 없다. 재판 과정을 보면 더 답답하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당일 아침에 갑자기 재판이 취소된 적이 많았다. 이미 법정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재판이 없다는 거다. 판사가 확진됐다든지, 가해자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든지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맞는데, 언제 다시 재판이 열릴지도 모른 채 재판이 미뤄지기 일쑤였다. 특검에서도 재차 확인됐지만 성폭력을 저질렀던 가해자, 2차 가해를 했던 해당 부대 지휘관 대다수가 불기소됐다.

중요한 책임자들이 제대로 입건이 안 되고, 그 사이 피의자 중에 한 사람인 노아무개 상사가 국방부 영내 수용시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력한 피의자가 사망해, 하루아침에 '공소권 없음'이 됐다. 대통령이 오고 장관이 방문해서 많이 바뀐 게 있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수사와 재판은 매우 더뎠다."
     
 2022년 1월 26일 오전 10시 용산 고등군사법원에서 공군 이예람 중사의 공판이 열렸다
ⓒ 정현환
 
-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20만 명을 최단기간에 돌파했다.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듣기도 했다. 직접 올리신 당사자로서 어떤 느낌이었나?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 굉장히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다. 댓글로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많이 위로받았다. 하지만 좋은 건 크게 기억에 남지 않지만, 나쁜 건 오래 남는 거 같다. 100명의 좋은 글을 봤어도, 한 개의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많이 지쳤었다.

여동생 얼굴을 공개한 뒤, 외모를 두고 '예쁘다', '안 예쁘다'라는 댓글 등 여동생을 비하하고 가해자의 성추행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면서 마음이 상했다. 사실이 아닌 뉴스, 가짜 정보에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금도 반박하고 싶지만 참고 있다. 좋은 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기에 힘든 순간을 잘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 고 이예람 중사 사망 뒤 어떻게 지냈나?

"저의 평소 꿈이자 특기인 '음악'을 살려, 곡을 쓰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작업을 하면서 진짜 많이 울었다. 이 세상에 내가 가 쓴 곡으로 여동생을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만들었는데, 곡과 뮤직비디오를 두고 말이 좀 있었다. 누군가가 '바이럴 마케팅이다'라면서 댓글을 달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동조하는 대댓글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런 말에 정말 많이 속상했다. 악플이 뭔지 그렇게 알게 됐다. 정말 순수한 행동이었는데 말이다. 여동생을 비난하는 의견을 보면, '성폭력을 당하고 방치된 여동생 마음도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을 2차 가해한 군인이나, 지금 악플을 다는 사람들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 현재 심정과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아직 여동생의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 국군수도병원 영현관에 안치되어 있다. 어머니는 가끔 동생 예람이가 보고 싶어 들여다보는데 예람이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너무 변한다. 어머니는 동생 시신 상태가 변하는 것 자체에 너무 많이 마음 아파하신다. 그래서 최근 냉장고에서 냉동고로 동생을 옮겼다.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을 거다. 하루빨리 동생을 따뜻한 곳으로 보내고 싶다. 아버지는 계속 재판에 참석하신다. 틈틈이 국회도 가신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도 하셨다. 그런데 사실 지금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다. 동생 재판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건강도 모두 염려된다. 그래서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음악이라는 꿈을 잠시 미루고 취업했다. 동생은 못 지켰지만 앞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켜야 된다는 마음에서다."

여동생을 잃고 오빠는 평소 꾸던 꿈을 접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남은 가족을 돌보고 있다. 오늘도 국가는 국민을 지켜주지 않아, 갑작스럽게 생업에 매진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 모든 군 사망사고 유족이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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