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때마다 꺾였던 수출…내년이 더 문제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1일 세계은행(WB)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79.8%에 이른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ㆍ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미국(23.4%), 일본(31.4%), 호주(40%), 프랑스(62%)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37.4%), 인도(43.7%) 같은 신흥국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독일(89.4%) 정도만 비견되는 수준이다.
한국은 수출 덕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외풍에 약했다.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꺾이면 여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연도별 수출 증감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때를 돌아보면 그렇다. 1998년 외환위기(-2.8%), 2009년 금융위기(-13.9%), 2012년 유럽 재정위기(-1.3%), 2019년 코로나19 위기(-10.4%) 등 예외는 없었다. 이 중 수출 감소에 더해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까지 적자로 돌아선 기간은 손에 꼽는다. 1997~98년, 2008~2009년 단 두 번이다. 한국 경제에 큰 상처를 남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터진 때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524억8000만 달러(약 74조원)로 지난해와 비교해 5.7% 줄었다. 2020년 10월 이후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무역수지는 이미 7개월 연이어 적자 행진 중이다. 수출과 무역수지가 동시에 꺾이는 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수출입 동향 브리핑에서 “무역 적자 지속, 10월 수출 감소 등 최근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수출 활력을 제고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전의 기회를 찾기 쉽지 않다. 전 세계 수요를 꺼뜨리고 있는 주요인인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유럽ㆍ일본의 금융시장 불안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글로벌 경기 하강, 중국 봉쇄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전 세계 교역이 둔화되면서 수출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라며 “특히 반도체 단가 급락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위축이 IT 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 당분간 증가세 반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내년이 더 문제다. 한국은행(1.6%)과 기재부(1%)는 내년 한국 수출이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유지하겠다고 내다봤지만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6~8월 전망이다. 세계 경기 둔화 속도가 심상치 않아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일찌감치 내년 수출이 0.3% 감소하겠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홍성욱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올 상반기 수출액이 증가했지만 물량보단 물가 상승에 따른 가격 효과가 컸다”며 “내년엔 이런 가격 효과가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ㆍ유럽 등의 성장세가 나빠지고 있어 내년 수출 경기가 추가로 둔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수출 경기는 자금시장 상황과도 직결된다. 한은 집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기준 경상수지 흑자 883억 달러 가운데 762억 달러(86.3%)가 상품수지에서 나왔다.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달러 90% 가까이가 상품 거래(무역)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한다면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국내 자금 경색도 더 심화할 위험이 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와 금융업권의 유동성 지원 조치로 ‘급한 불’은 막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못 된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투자 심리 회복보다는 추가 악화를 방어하는 정도의 조치”라며 “물가가 안정돼야 최근 금융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인 미국 금리 인상이 중단될 텐데,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불안 심리는 지속할 전망”이라고 짚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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