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 한국에겐 '전략적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수형 2022. 11. 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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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의 서막...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이수형 기자]

국제질서는 혼란의 전환기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의 막이 올랐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영향력 확장을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체제적 도전(systemic challenges)으로 인식한다.

즉, 지난 10여 년 동안 기술적 진보, 유럽의 하부구조(항구, 전력망, 텔레콤 등)에 대한 투자와 영향력 확대, 남중국해와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위협,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 강화, 핵 능력 강화, 인권 유린과 공세적 외교 행태 등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 걸친 중국의 행보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한 최대의 도전이자 이를 지탱해주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 그리고 다양한 국제제도의 작동원칙과 원리를 재해석하거나 이를 위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중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미국 중심의 권력 지형 재편을 도모하고, 나아가 대의제 민주주의, 삼권 분립, 그리고 개인의 인권 존중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근본적 생활양식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보고 있다. 즉, '체제적 도전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중(對中) 접근의 차이

중국의 체제적 도전과 관련하여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처음부터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견제 혹은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이나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정책을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중국을 국제적 수준에서 자신의 위상과 입지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자이자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미국은 주로 중국의 대외적 행보에 초점을 두고 대중 견제를 위해 군사안보 위주의 다양한 정책과 전략을 전개해 왔다.

이와는 달리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국내 정치의 개선과 발전을 기대하면서 중국의 내부적 상황 변화에 초점을 두고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중국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 입장을 강조하였다. 즉, 유럽 국가들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2001년을 전후하여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대중 접근을 추진하였다.

비록 유럽 국가들이 서구적 가치와 전통에 맞지 않는 중국의 사회체제에 일정 정도의 의구심과 불만이 있었지만, 안보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을 잠재적 위협 행위자로는 인식하지 않았다. 유럽 국가들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이들 모두와의 동시적 발전을 도모하고 특정 쟁점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는 균형적 자세를 보였다.

유럽의 대중 인식의 변화와 중국으로부터의 체제적 도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확대되고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기대했던 유럽 국가들은 시진핑 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목격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몽의 실현을 내세운 시진핑 정부는 국내 정치의 개혁적 발전과 변화보다는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건히 다져 나갔다.

특히, 시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시장 개방과 경제 성장은 유럽의 기대와는 달리 국가 주도의 성장모델이 일반화되었다. 또한 기존의 평화 지향적인 '판다(곰) 외교' 대신 강국 건설을 위한 공격적인 '전랑(늑대전사) 외교'로 선회한 중국의 외교 행태는 주변 국가들의 불만과 우려를 자아내고 유럽 국가들의 전통적인 규범 외교와 갈등을 일으켰다.

유럽 국가들은 2017년 10월에 개최된 제19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이 당 주도의 권위주의 정치체제 강화와 국가 주도의 경제 체제를 확고히하고 이를 다른 국가로의 수출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2018년 3월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앰으로써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와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은 뚜렷해졌다. 이를 계기로 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대중 경제적 접근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안보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대중 접근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2017년 11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공표 시점을 전후로 중국에 대한 유럽의 인식과 입장은 미국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고, 나아가 2019년 3월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는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규정하였다. 중국을 바라보는 유럽 국가들의 인식과 입장 변화는 2019년 12월 런던 정상회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문제가 나토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체제적 경쟁 시대의 서막

2021년 제31차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나토는 중국발 체제적 경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나토 차원이든 아니면 유럽연합 차원이든 상관없이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글로벌 질서 재편을 고려한 체제적 도전으로 인식하였다.

2022년 6월 마드리드 정상회담에서 나토는 유럽연합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공식화하고 글로벌 질서 재편을 겨냥한 중국의 체제적 도전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10월 12일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공표해 이러한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자신을 체제적 도전자로 규정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에 대해 중국도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10월 16일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의 토대를 쌓은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협박·억제·봉쇄하고 최대한 압박하려는 외부의 시도에 맞서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야흐로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서방 세계와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과의 본격적인 체제적 경쟁의 막이 올랐다. 미국과 유럽은 유럽-대서양 지역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적 연결성을 강조하면서 동맹국과 우군 결집을 통해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에 임하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에 기반한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매개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연결성을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체제적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도전과 응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체제적 경쟁은 지역적·국제적 안보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은 과거 미국과 소련 간에 형성되었던 냉전체제와는 성격이 판이하지만, 느슨한 진영화 구도를 형성해 나가면서 지역과 지역의 지정학적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정학의 안보 연결성의 강조로 역내 진영화와 지역 간 진영화라는 이중적 진영화를 추동하는 체제적 경쟁은 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영역에 걸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딜레마를 부과하면서 한국의 대외정책 추진에 가장 힘든 도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객관적 현실: 분단국, 동맹국, 반도 국가, 통상국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자신에 대한 객관적 현실 진단과 이에 바탕을 둔 전략적 설계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객관적 현실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은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평화증진을 통해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분단국가이다. 둘째,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그리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공헌해 왔다.

셋째,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전략적 이익이 교차하는 반도 국가이다. 평화와 안보에 대한 한국의 역량과 의지가 부족하면 한반도는 언제든지 주변 국가들의 권력 투쟁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세계적 통상국가이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한국은 지역적·국제적으로 다양한 국가들과의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 경제 교류를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한국의 객관적 현실을 고려했을 경우,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은 한국을 양자택일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이 추구하는 대외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객관적 현실을 반영한 전략적 나침반을 마련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가 섞여 있는 전략적 나침반을 준비해야

한국의 국가 정체성과 국민 정서, 그리고 전통적인 한미관계의 역사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외교정책이 동맹국 미국과 흐름을 같이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한국이 중국과 글로벌 체제적 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느 선까지 편승 혹은 밀착하느냐이다.

즉, 우리가 풀어야만 하는 전략적 난제는 미국과의 정책 방향과 흐름, 그리고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내용과 깊이에서의 공유의 문제로 한국의 객관적 현실에서 파생하는 연루의 딜레마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중 관계의 발전은 한국에 새로운 리스크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아주 인접한 이웃 국가이자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북관계의 발전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수이다. 더군다나 경제력에 기반한 중국의 부상과 강대국화로 한국은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모색해 나갈 수밖에 없다. 국가 정체성과 체제, 가치와 규범이 다른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로 협력의 영역과 분야, 그리고 강도와 깊이를 추진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이다.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체제적 경쟁에서 한국이 양자택일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대외정책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전략적 나침반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눈으로 직시한 현실 상황을 반영한 종합적인 국가안보전략을 마련하여 상황과 여건에 따라 명분과 실리 간의 시소게임이 진행될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만 한다.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강조하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국익 창출이 뒤따르지 않는 외교안보정책 추진은 지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더라도 명분을 상실한 국익 추구의 대외정책 추진도 자제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 간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한 대외정책 추진은 삼가야 한다. 이러한 발상을 갖고 한국은 조속히 종합적인 국가안보전략을 마련하고 분야별 세부 전략을 그려 본격적으로 진행될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에 선제적·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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