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원전뚝심 빛봤다…13년만에 원전수출 '물꼬'
사신 부총리 "한수원 본계약 체결 가능성 100%"
한국형 원자력발전소인 APR1400 수출길이 13년 만에 폴란드에서 열렸다. 폴란드 정부 주도 원전 사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길을 열어줬지만 민간 주도 별도 사업에선 한국수력원자력에 러브콜을 보냈다. 한수원, 폴란드 민간발전사 ZEPAK, 폴란드 국영 전력공사 PGE 등 양국 3개사는 지난 31일 신규 원전 산업 추진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탈원전을 추진한 지난 정부가 5년 내내 해외원전 수주 '0건'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원전에 방점을 둔 현 정부의 과감한 에너지 정책 전환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자체 에너지 개발계획에 맞춰 원전을 확보하려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은 양국 기업의 협력의향서 체결을 위해 한국을 직접 방문했다. 의향서 체결 후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그는 한수원의 본계약 체결 가능성이 60% 혹은 80%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짧게 말하겠다. 100%다"라고 답변했다.
통상적으로 협력의향서 제출은 수주를 확언할 수 없는 단계는 아니지만 폴란드 부총리의 발언은 수주 가능성을 담보할 시금석이라는 평가가 크다. 양국 기업의 협력의향서가 양국 정부의 '보증' 아래 체결된 점도 유의미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신 부총리의 발언을 다른 의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폴란드 협상단 측은 정부 사업은 미국, 민간 원전사업은 한국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현재 러시아가 빠진 상황에서 원전 수출 경쟁국은 미국과 프랑스 정도다. 미국이 앞서 정부 주도 사업권을 따낸 상황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더 이상 경쟁자나 추가 입찰은 없을 확률이 높다고 산업부는 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자신감을 내비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폴란드 정부는 앞서 지난해 2월 '에너지정책 2040(PEP 2040)'을 발표했다. PEP 2040에는 '원자력 사업의 주요 부분은 (폴란드 정부와) 폴란드 기업의 참여와 함께 시행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8일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일대 원전 6기 신규 건설 정부 프로젝트 사업자로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선정했을 때만 해도 일각에서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수주 경쟁에서 밀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3일 뒤 체결된 이번 LOI로 '정부 추진 사업은 미국, 민간 추진 사업은 한국'이라는 폴란드 정부의 구상이었음을 확인하게 됐다.
산업부 장관과 폴란드 국유재산부 장관이 체결한 양해각서에는 '양국 기업이 추진하는 퐁트누프 프로젝트 원전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한수원의 폴란드 신규 원전 사업 참여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크다.
폴란드가 자체 에너지 개발 계획에 맞춰 원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계획된 공기와 예산을 맞추면서 원전을 짓는 한국의 시공능력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등을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번 원전 협력으로 윤석열 정부의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 탄력을 받게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를 고려해 원전 건설을 고려하는 국가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이번 협력을 계기로 한국 원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에 원전 수출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다만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는 남겨졌다. 한국과 원전 수출 동맹을 맺은 미국의 견제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한수원과 한국전력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소송을 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이 자사 기술 기반인 만큼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면 자사와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 원전 수주에 걸림돌이 될 확률도 있어 한국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은 한국 원전업계를 견제하려는 전략"이라며 "양국 원전 동맹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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