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대신 '최악 고통' 준다…러 교묘해진 보복 수법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대부분이 단전·단수를 겪었다고 BBC 등이 이날 보도했다. 특히 전기가 끊긴 한 병원에선 치료를 중단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가 겨울을 앞두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을 늘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는 이날 미사일 공격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날 공습은 오전 8시쯤 시작됐으며, 키이우 상공에서만 최소 5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또 서부 르비우와 남부 자포리자 등 10여곳이 대대적 공습을 받아 에너지 등 민간시설 18곳이 타격을 입었다. 북동부 하르키우주도 전력망이 파괴돼 주민 14만명에 대한 전기 공급이 끊겼다. 단 사망자는 없었으며, 부상자 13명으로 집계됐다.
우크라이나는 미사일 50기 가운데 44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군 시설과 에너지 시설을 겨냥했으며, 모든 목표물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키이우의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러시아군의 공습 직후 키이우 전체 가구의 80%가 단수되고 아파트 35만 가구가 정전됐다"고 말했다. 이후 일부 시설이 복구되면서 전기·수도 공급이 재개됐으나, 여전히 키이우 주민의 40%는 수도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내 공용 수도 시설 앞은 물을 구하기 위해 양동이를 든 시민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27만 가구는 여전히 전력 공급이 끊긴 상태다.
시내 병원 4곳도 수도·전기가 모두 끊겨 의료기기 작동이 멈췄다. 수술실과 수술 도구 소독도 할 수 없게 되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례도 속출했다. 키이우 지역 병원의 이반 클루즈코 원장은 텔레그래프에 "모든 수술이 취소됐고 투석도, 병원 청소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키이우 당국은 가로등을 점등하고 트롤리버스 운행을 중단하는 등 에너지 절약 대책을 강구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배차 간격도 길어졌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민간 시설 공격이 장기전에 대한 포석일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 존 로프는 가디언에 "러시아는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그들에게 최악의 고통을 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한다면 파괴하는 쪽을 택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댄 사바 가디언 국방·안보 에디터도 사설을 통해 "러시아의 전력망 공격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기를 죽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혹한을 앞두고 민간 인프라 시설을 파괴해 우크라이나의 비용 부담을 가중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공습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 주둔한 흑해함대를 겨냥해 드론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과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협정' 참여를 중단키로 한 결정은 우크라이나의 흑해함대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다"며 후속 조치가 뒤따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8일 크림대교 폭발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의 민간 시설을 공격해 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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