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책·작가 북토크 취소하라' 대전시 편가르기 행정 논란

장재완 2022. 11.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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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대전평생교육진흥원, '이념 치우쳤다 민원' 이유로 취소... 당사자들 반발

[장재완 기자]

 대전평생교육진흥원과 희망의책대전본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2022 책 읽는 대전 북토크' 일정표. 이 중 붉은색으로 표시된 3강좌를 대전시가 '이념편향적인 좌파 서척 또는 강사'라는 이유로 취소토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시장 이장우)가 이념편향적인 서적과 작가라는 이유로 예정돼 있던 북토크를 취소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들은 대전시가 편향된 이념 잣대로 편 가르기 행정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희망의책대전본부(이사장 강신철)는 대전평생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과 공동으로 2022 책 읽는 대전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진흥원이 강사비를 지원하고, 희망의책대전본부가 대전서점연합회 등과 함께 지난 9월부터 11월 말까지 20강좌의 북토크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

문제는 지난 10월 27일 진흥원 담당 부서에서 강신철 이사장과 강사들에게 북토크 취소를 통보하면서 발생했다. '이념편향적인 좌파서적이거나 좌파작가라는 민원이 대전시에 접수됐다'는 이유다.

6좌파성향이라는 민원이 들어온 강좌 6개 가운데 아직 진행되지 않은 10월 28일 <기후미식>(강사 박정현), 11월 5일 <파이로>(작가 박현주), 11월 19일 <힐빌리의 노래>(강사 송경섭) 등 3개 강좌를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따라 희망의책대전본부는 하루 전 취소가 통보된 <기후미식>(박정현)은 시간이 촉박해 전면취소하고, <파이로>(박현주)와 <힐빌리의 노래>(송경섭)는 자체 예산으로 시간과 장소를 변경해 진행키로 했다.

그러면서 희망의책대전본부는 공지한 사과문을 통해 "좌파이념 성향의 책 또는 발표자라는 이유로 북토크를 중지해달라는 대전시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3개의 강좌가 취소됐음을 알려드린다"며 "민원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대전시의 입장이 납득하기는 어려우나 대전시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진흥원 담당자들의 곤란한 입장을 고려해 부득이 취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신철 이사장은 "책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내용파악이나 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의아스럽다"며 "아무리 민원이 접수됐다고 해도 이미 많은 시민들에게 공개해 약속된 행사를 갑자기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취소통보를 받은 당사자들은 황당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행사 하루 전 취소통보를 받은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은 "진흥원에서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강신철 이사장에게 전달 받았는데, 행사 하루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이런 행정이 어디 있는가"라면서 "행정의 기본도 안 돼 있고, 예의마저도 없다"고 분개했다.

그는 또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민원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민원을 참고하고 반영해서 평가도 하고 다음에 잘 기획하면 될 일이지, 이미 공지가 돼 시민들과 약속을 해 놓은 행사를 하루 앞두고 취소할 수 있느냐"며 "아울러 그 사유가 이념적으로 좌편향이라고 하는데, 기후미식은 전혀 이념적이지도 않고, 좌파나 우파도 아닌 내용이다. 이는 시민들을 편 가르기를 하고 갈라치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경섭 강사는 "<힐빌리의 노래> 저자는 미국 공화당 후보로 2022년 상원의원 선거에도 출마한 이력이 있는 J.D. 밴스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이다. 이념적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우파라는 소리를 들을망정 좌파가 아니"라면서 "저의 경우에도 정당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무당파다. 또 좌파 소리를 들을 만한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박현주 작가 역시 "<기후미식>도 마찬가지지만 <파이로>는 환경문제를 다룬 책이다. 이게 어떻게 이념편향적인 좌파서적인가"라면서 "더욱이 이유를 묻는 질문에 '민원이 제기됐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데, 민원이 제기된다고 모든 행정을 멈춰야 하는가.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다. 책을 검열하고 사상을 검열하던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분노했다.

대전시 "좌파라 한 적 없다, 이념적으로 치우졌다는 민원 전달했을 뿐"

이러한 반발에 대해 대전시와 진흥원은 '민원이 제기돼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대전시의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이런 강좌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전달받았다. 당초 6개의 강좌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는데, 남은 4개의 강좌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모르니 일단 중단시키도록 했다"며 "물론 일단 진행하고 나중에 판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민원이 워낙 강력하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시 입장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 어느 쪽에 편향돼서는 안 된다. 진흥원에서 하는 사업일지라도 대전시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중립적이어야 한다"며 "그래서 제기된 민원을 진흥원에 전달한 것 뿐, 판단은 진흥원에서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는 '좌파다'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또 특정 강좌나 강사를 찍어서 말하지 않았다"며 "다만 이념적으로 치우쳤다는 민원이 있다는 것을 전달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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