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표 여배우의 선택, 실망스러운 이유
[김성호 기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도 규모가 작지만 작가의 의도가 진하게 묻어나는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작가주의 영화라거나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이들 영화는 대규모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대신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독립영화며 해외 다양성영화들까지 다양한 영화가 있는 가운데 이중 가장 몸집이 큰 건 역시 유럽영화, 그 중에서도 프랑스 영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국에 들어온 프랑스 영화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배우는 누구일까.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중 가장 윗줄에 레아 세이두의 이름이 있으리란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세이두는 남자배우 중 티모시 샬라메가 그렇듯 영화팬 사이에서 강력한 팬덤을 지닌 프랑스 대표 배우다. 한때는 줄리엣 비노쉬,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 샤를로뜨 갱스부르 등이 차지했던 프랑스 대표 여배우 자리를 이 시대엔 세이두가 이어받았다 해도 좋겠다.
▲ 디셉션 포스터 |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힙한 배우 레아 세이두의 선택
불행히도 <디셉션>은 세이두의 지난 선택에 비해 많은 실망을 안기는 듯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나이든 남성 작가의 여성편력에 대한 것이고 세이두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도 대부분의 장면에서 수동적 대상에 머물고 있어 팬들의 심기를 적잖이 거스르는 탓일 것이다. 극중 작가는 여성들을 기만하고 이용하며 소설에서 영감을 얻는 원천으로 활용하는데, 영화가 이를 평가하거나 처단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으니 성감수성과 도덕에 엄격한 이들이라면 첫인상이 좋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기만이나 사기를 뜻하는 'Deception'을 제목으로 삼은 것부터가 영화는 진실하지 못한 이를 다루거나 스스로 진실하지 못하기를 택했음을 공표한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아내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며 상대에게도 그러기를 요구하는 모습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감정이 거짓된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이들 간의 관계가 여느 연인처럼 느껴질 때가 적잖은 것이다. 더욱이 불륜의 주동자가 작가란 점을 십분 살려 영화 속 인물 간 오가는 대화는 제법 지적이고 세련되어 보는 이의 흥미를 끄는 구석이 적잖다.
▲ 디셉션 스틸컷 |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영화를 더 낫게 하는 배우의 역량
필립의 소설에선 성차별적 시선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존재하기 위해선 현실의 여성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필립은 현실 속 여성들을 갈망하며 그녀들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혐오와 갈구는 이처럼 가까이 붙어 있고 많은 여성들이 그의 소설을 욕하면서도 그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배신에 분노하면서도 그에게 애정을 느낀다. 기만과 거짓이 얽혀드는 가운데 필립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나란히 펼쳐진다.
세이두는 <디셉션>의 마지막에서 제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필립과 만난다. 필립 앞에 세이두는 제가 그의 소설을 읽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털어놓는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불륜 상대로서의 관계가, 소설가와 소설 속 인물의 모델이 된 여자의 관계가 그곳에서 새롭게 변화한다. 세이두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기는 극에 끊임없이 긴장을 불어넣는다.
▲ 디셉션 스틸컷 |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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