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원ㆍ케플러ㆍ스맨파 숨은 조력자…방송사도 A&R 시대
A&R(Artists and Repertorie). K팝 팬들에게는 익숙한 듯 낯선 단어다. 2005년 SM엔터테인먼트 A&R파트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 자리에 오른 이성수 공동 대표의 성공담이나 1996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박진영 대표 프로듀서조차 A&R의 컨펌을 거쳐야 일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 용어가 제법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기획사별로 편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A&R은 새로운 아티스트 발굴과 육성, 실질적인 앨범 제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과정을 아우른다. 쉽게 말해 초보 햇병아리 연습생을 상품성 있는 뮤지션으로 키워내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쏟아붓는 핵심 파트라 할 수 있다.
CJ ENM이 2020년 11월 방송사로는 이례적으로 A&R팀을 꾸린 것도 그래서다. Mnet ‘프로듀스’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아이돌 육성 및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기획사 웨이크원도 덩달아 몸집이 커지면서 이를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는 교두보가 필요해진 것. 지난해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을 통해 결성된 케플러부터 여성듀오 다비치와 싱어송라이터 로이킴 등 소속 가수 면면도 다양하다. 지난달 말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제임스 리 A&R팀장에게 지난 2년간 생긴 변화에 대해 물었다.
“방송사에선 프로그램이 곧 아티스트”
Q :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A : 팀이 생기고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걸스플래닛’이다. 2017년 ‘프로듀스’ 시즌 2 진행 당시 Mnet과 음악사업본부가 합쳐지면서 데뷔곡 ‘에너제틱’부터 워너원 앨범 5장을 만들었다. 기획사 입장에서 아티스트에게 어떤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고민했다면, 방송사에서는 프로그램 자체가 아티스트가 되는 셈이다. ‘와다다’ 등 케플러 곡은 ‘걸스플래닛’에서 보여준 에너지가 그대로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Q : ‘스트릿 맨 파이터’에서 발표한 음원도 화제가 됐다.
A : 지난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부터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를 진행하면서 댄스에 최적화된 음원 제작 필요성을 느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 저작권 이슈도 있었다. 제작진 및 음악감독과 함께 ‘스맨파’ 출연진이 확정되기 전부터 후보군에 맞춰 트랙 작업을 시작했다. 계급 미션을 위해 만든 지코의 ‘새삥’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지만 윤미래와 비비의 ‘로우(LAW)’도 너무 좋았다. 메가 크루 미션에는 NCT 태용ㆍ마크의 ‘릿(LIT)’이나 스트레이 키즈의 ‘헤이데이(HEYDAY)’ 등 아이돌 그룹이 참여했는데 확실히 어디서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Q : 케이콘에서 선보인 ‘팝피아(POPPIA)’도 인상적이다.
A : 지난해 MAMA에서 호스트를 맡은 이효리와 ‘스우파’ 리더 합동 무대를 위해 ‘두 더 댄스(Do the dance)’를 만들었는데 호응이 좋았다. 시상식에 주제가가 있으면 결속력을 다지는 효과도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에이티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펜타곤, 일본에서는 INI와 TO1이 불렀는데 각 팀의 개성에 맞게 편곡해서 선보였다.
“해외서도 K팝 장르적 접근 가능해져”
제임스 리 팀장은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L.A.의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6년 배우 겸 가수인 제이미 폭스의 스튜디오부터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2013년 한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스타제국 등을 거쳐 2016년 CJ ENM에 입사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K팝에 대한 관심이 컸다. 샤이니 영국 공연 등이 화제가 되고 K팝이 조금씩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A&R 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미 SM처럼 기틀을 마련한 회사도 있었지만, 회사 규모에 따라 차이가 컸어요. 저는 처음엔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와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2019년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으로 자리를 옮겨 여자친구를 담당했던 그는 “방시혁 프로듀서와 일을 하며 최상의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마인드를 배웠다”고 말했다. 조용필 19집에 수록된 ‘말해볼까’ 등의 퍼블리싱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가요 시절부터 K팝까지 압축적으로 경험한 셈”이라며 “결국 A&R은 아티스트와 수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아티스트 앤 릴레이션(Artists & Relations)’의 약자 같다”고 덧붙였다.
“이제 K팝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하나의 장르가 됐어요. 송 라이팅 캠프 등을 통해 영미권 작곡가들도 K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장르적 접근이 가능해졌죠. 한국에서도 관련 전공이나 학원도 생기고 전반적으로 실력이 상향 평준화됐어요. 예전에는 해외 작곡가들이 주로 밑바탕이 되는 트랙을 만들고 한국에서 탑라인(멜로디)을 썼는데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많거든요. SNS 발달로 이전에 교류가 없더라도 직접 연락해서 협업하는 일도 많아졌고요. K팝은 처음부터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하는데 엄청난 발전이죠.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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