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레고랜드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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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병원 로비에 들어섰다.
진료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대기실에 앉았고, '삐' 소리가 나자 십수명의 다른 대기자들이 일어섰다 앉는 장면을 목격한다.
당황한 것도 잠시, 서너번의 '삐' 소리 이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녀는 '삐' 소리가 날 때마다 일어섰다 앉았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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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한 여성이 병원 로비에 들어섰다. 진료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대기실에 앉았고, ‘삐’ 소리가 나자 십수명의 다른 대기자들이 일어섰다 앉는 장면을 목격한다. 당황한 것도 잠시, 서너번의 ‘삐’ 소리 이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흥미로운 점은 다음이다.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녀는 ‘삐’ 소리가 날 때마다 일어섰다 앉았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이 동영상은 동조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몰래카메라였다. 인간은 매순간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는 것이다.
동조현상은 자본시장에서 종종 나타났다. 특히 갑작스런 악재일 경우 파급력은 더 크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3월 국내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발생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전부 말 그대로 공포에 팔아치우는 ‘패닉 셀링’에 나섰고,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최근 강원도 춘천의 한 테마파크에서 시작된 채권시장 경색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채권거래액은 전달보다 100조원 가량 급감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거래 규모를 기록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발행했던 20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만기일 하루를 앞두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이후 시장 참가자들이 채권투자를 꺼린데 따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2000억원 상당의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100조원의 자금을 삼킨 것이다.
강원도가 뒤늦게 레고랜드 ABCP를 갚겠다고 나섰지만, 얼어붙은 채권시장은 쉽게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자금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진정세를 보이던 채권시장은 최근 작은 소문 하나에도 쉽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통상 금리인상은 채권시장에 악영향을 준다. 새로 발행되는 채권은 인상된 금리만큼 높은 이자를 제시하면서 기존 채권의 매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금리인상 한 복판 속에서 강원도의 레고랜드 ABCP 디폴트 선언은 부동산PF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트리거가 되면서 전체 채권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직 부동산PF 부실에 따른 위기는 시작도 안됐는데, 시장은 위기감을 선반영 중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일부 건설사와 증권사의 부도설이 돌았고, 과거 부동산PF 부실이 경제 위기로 번진 '경험'이 채권시장 참여자들의 동조현상을 부추긴 것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국내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사 40여곳이 부도났고,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큰 저축은행 31곳이 영업정지됐다. 일부 저축은행은 VIP고객의 예금은 영업정지 직전 인출해준 사실이 탄로났고, 당시 저축은행의 부실을 눈감아 준 전현직 금융당국 수장들이 청문회장에 끌려나왔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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