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종 떠오르게 한 키아나, 스타 탄생 예고한 데뷔전
[이준목 기자]
▲ 31일 경기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하나원큐 여자농구단과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3쿼터 삼성생명 키아나 스미스가 하나원큐 선수들의 수비에 맞서 슛하고 있다. 2022.10.31 |
ⓒ 연합뉴스 |
WNBA 출신의 위엄은 거품이 아니었다. 용인 삼성생명의 '특급 루키' 키아나 스미스가 WKBL(여자프로농구) 공식 데뷔전에서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0월 31일 경기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삼성생명은 85-69로 제압하고 개막 첫승을 신고했다. 스미스는 이날 역대 신인 개막전 최다득점인 21점을 기록하며 강유림(26점·3점슛 4개 9리바운드)-배혜윤(19점 16리바운드 7어시스트)과 더불어 팀 승리를 이끌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생인 스미스는 미국인 부친과 한국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혼혈이다. WKBL은 '외국 국적을 가진 해외 활동자로서 부모 중 최소 1인이 현재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 한국 국적을 가졌고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등록된 적이 없는 선수'라면 드래프트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스미스는 이번 2022-2023 WKBL 신인드래프트에 '외국국적 동포선수' 자격으로 참가를 신청하며 용인 삼성생명에 1순위로 지명됐다. 역대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국국적 동포가 1라운드 1순위로 뽑힌 건 스미스가 최초였다.
스미스는 역대 외국국적 동포 출신 선수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스미스는 고교 시절 미국 최고 유망주의 상징인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정됐고, 미국 루이빌대를 NCAA(미국대학농구) 4강으로 이끌기도 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여자농구 프로리그로 꼽히는 WNBA(미국여자프로농구)에도 올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6순위로 LA 스파크스에 지명되어 데뷔 첫 해 11경기 평균 2.6점, 3점 슛 성공률 27.8%를 기록한 바 있다. 커리어만 놓고보면 현재 WKBL 최고의 스타인 박지수(KB스타즈) 이후 가장 화려한 신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여자농구에는 2007년 금호생명에 입단한 마리아 브라운을 시작으로 제네바 터커-임정희(삼성생명), 린다 월링턴(우리은행), 김한빛(하나원큐), 수잔나 올슨-크리스틴 조(KB스타즈) 등 혼혈선수를 비롯하여 재미교포-재일교포 등 많은 외국국적 동포 선수들이 활약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김한별(킴벌리 로벌슨, BNK 썸)은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MVP를 석권하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고, 루마니아 국적의 김소니아는 식스우먼상과 기량발전상 등을 수상했다. 다만 이들 모두 해외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문화와 농구환경 등에 익숙해지는데 몇 년간의 적응기를 필요로 했다.
이들과 키아나 스미스의 가장 큰 차이는 이미 데뷔와 동시에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았다는 데 있다. 2020-2021시즌 우승 후 지난 시즌에는 5위에 그쳤던 삼성생명은 스미스의 가세로 단숨에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스미스는 드래프트를 앞두고 신인들끼리의 트라이아웃 경기에서 이미 격이 다른 기술과 운동능력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높였다.
▲ 31일 경기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하나원큐 여자농구단과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85-69로 승리한 삼성생명 선수들이 서로 격려하며 기뻐하고 있다. 2022.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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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가 단일리그제(2007~2008시즌부터) 도입 이후 스미스 이전까지 신인이 개막전에서 거둔 최다득점은 강아정이 2007년 데뷔전을 기록한 5점에 불과했다. 그만큼 신인선수들에게 프로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스미스는 1쿼터에 이미 5득점을 올리며 강아정과 타이를 이뤘고, 경기를 마칠 때까지 기록을 무려 16점이나 경신해버렸다.
스미스의 플레이스타일은 깔끔하고 시원시원했다. 탄력의 우위를 살려 수비를 달고도 과감한 슛 시도로 앤드원을 얻어내는가 하면, 승부처에서 스텝백으로 3점포를 꽃아넣기도 했다. 스미스는 첫 경기부터 무려 33분 22초를 소화했고 3점슛 3개(3/8), 2점슛 5개(5/10)를 성공시켰고 자유투는 2개를 얻어낸 것이 모두 적중했다. 전반에는 다소 슛감이 좋지않았던 듯 오픈샷을 몇 차례 놓치기도 했고패스와 팀플레이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감을 찾으며 더욱 적극적인 공격시도가 돋보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임근배 감독이 우려한데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미숙했다. 팀수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하나원큐 선수들의 패턴플레이를 따라가지 못해 공간을 허용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한국농구는 확실한 림프로텍터 역할을 해줄 장신 선수가 부족하여 공격과 수비 모두 모든 선수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유기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개인능력으로 해결할수 있는 공격에 비하여 팀 수비에 대한 적응은 시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스미스의 데뷔전은 남녀를 통틀어 한국농구 역대 최고의 외국국적 동포 선수로 불리우는 문태종(은퇴)을 연상시켰다. 문태종은 2010-2011시즌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소속으로 데뷔하여 서울 삼성과의 첫 경기에서 3점슛 3개 포함 20득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라는 맹활약을 펼친 바 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기록만이 아니라 문태종의 여유롭고 침착한 경기 운영 능력에 감탄하며 "농구를 알고하는 선수"라고 극찬한 바 있다.
키아나 스미스도 문태종과 비슷한 슈터에 가깝고, 첫 경기부터 긴장하는 모습도 찾을수 없이 영리하고 여유로운 플레이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았던 공통점이 있다. 당시 문태종의 노련함은 35세로 이미 베테랑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장면이었지만, 스미스는 아직 23세에 불과하다. 앞으로 경험이 쌓이면 기량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한 국내 선수들과의 친화력, WNBA 출신다운 자신감과 승부욕도 스미스의 성공적인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스미스는 "첫 경기를 이겨서 기쁘다. 크게 긴장하지 않았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만족하면서도 "하지만 수비는 부모님에게 많이 혼날 것 같다"는 셀프디스로 너스레까지 떨 만큼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수(KB)의 공백으로 대형스타의 부재를 우려했던 WKBL에 스미스의 혜성같은 등장은 새로운 활력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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