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신이 불법인 나라에서 산부인과 의사는
[이하정 기자]
네 명의 아이를 둔 나는 가끔 이런 소리를 듣는다. "대단하다! 국가가 큰 상을 줘야 한다." 결코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은 건 아니지만 낮은 출산율로 인해 저절로 애국자가 되었다.
▲ 모옌의 <개구리>(모옌, 민음사, 2021)는 마오쩌뚱 집권 당시 '계획생육' 정책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의 인생을 다룬다. |
ⓒ 민음사 |
극단적인 출산 억제 정책으로 고통 받았던 민중의 삶을 다룬 소설이 있다. 2012년에 발표된 모옌의 <개구리>(모옌, 민음사, 2021)는 마오쩌뚱 집권 당시 '계획생육' 정책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의 인생을 다룬다.
국가는 '아들이면 더 낳지 말고, 딸이면 8년 뒤에 낳으라'라는 산아제안을 강제했고 이를 어긴 사람에게 감봉, 벌금, 승진 제한 등의 여러 불이익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낙태수술을 하다가 많은 여자들과 아기들이 죽었다.
작가 모옌은 이 정책을 비판하기보다 "사람의 모습"(p.10)을 똑바로 보면서 썼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며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인간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환각적 리얼리즘으로 민담과 역사, 당대 현실을 모두 융합"했다는 찬사와 함께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의 서술자인 '커더우'는 저자인 모옌 자신이며, 주인공은 무자비하게 계획생육 정책을 수행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그의 고모이다. 소설 초반까지 고모와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균형 있게 서술하던 화자는 불법으로 둘째를 임신한 부인이 낙태 수술 도중에 사망하면서 계획생육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
동시에 고모가 죽어 가는 산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 역시 피해자임을 인식한다. 주인공 고모는 처음에는 산모와 아기를 인격적으로 대했던 뛰어난 산부인과 의사였지만 당의 정책에 복종하며 2800명의 아기를 낙태시켰고 은퇴 후 그 죄책감 때문에 개구리 환영에 시달리다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점토인형을 만든다.
아무리 신념에 따른 무지막지한 행동이었지만 인간적인 갈등과 고통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뒤늦은 속죄를 통해서라도 인간성을 지켜내고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계획생육은 등소평 체제의 시장 개방 이후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또 다른 비극으로 이끈다. 돈 많은 사람은 정책의 허점을 이용하여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더 낳았다. 예순의 커더우는 둘째 부인과 고모의 노력으로 계획생육의 피해자이자 친구의 딸인 천메이를 대리모 삼아 아들을 가진다.
그의 어머니는 여자가 태어난 이유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여자의 존엄 역시 아이를 낳아야 생기는 거다"(p.311)라고 말한다. 샤오스쯔는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낳았고 완전한 여자가 된다. 커더우는 이를 지켜보며 아들을 품에 안고 만족하는 듯하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5만 위안, 여자아이는 겨우 3만 위안이야! 이 개자식들……. 남존여비, 봉건주의자들, 너희 엄마들은 여자 아냐? 할머니는? 남자만 낳고 여자는 안 낳으면 이 세상이 돌아가겠어? 고위 공직자, 지식인, 많이 배웠다는 똑똑한 양반들이 그렇게 단순한 이치도 몰라?" (p.495)
소설의 제목 <개구리>는 아이를 상징하며 생명력을 의미한다. 개구리 한자어인 와(蛙)는 같은 발음인 와(娃)에 어린애 혹은 인형이라는 뜻이 있다. 또한 두 발음 모두 아기의 울음소리와도 비슷하다. 극작가인 화자의 필명인 커더우는 '올챙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정자의 모양과 닮았다.
또한 개구리는 그 지역의 토템이며 다산을 상징한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 유일한 존재이며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p.484)라는 커더우의 말처럼 작가는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아이란 그 자체로 생명이며 완전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개구리>는 중국적 소재를 통하여 생명의 본질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깊고 섬세하게 끌어낸 작품이다. 계획생육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인간성을 지키며 생명을 이어왔음을 보여준다. 다만 고모에게 "죄인이 아니라 공신"(p.578)이라며 정책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과 대리모 문제에 대한 화자의 소극적인 태도는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양한 입장에 놓인 여러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 부분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이지만 옆에서 이야기하듯 가독성 높은 문장력 덕분에 술술 잘 읽히는 장점도 있다. 깊이 있는 중국 문학을 경험하고 싶거나 다양한 형식의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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