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상식] 엘리야의 능력있는 기도
§엘리야의 기도(왕상 18:41-46)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한 피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1542~1587)는 백만 군사보다 존 낙스(John Knox·1514~1572)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토설했다. 당시 영적 간음으로 타락한 가톨릭 교회에 대해 종교개혁을 향한 담대한 용기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불사한 그의 기도였다.
기도는 곧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은혜의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 문을 여는 일이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살아계신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와 함께 그 분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단호히 던져버려야 한다. 엘리야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땅이 우상숭배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기도한 즉 제단 위 불이 떨어진 것과 또한 흉년이 든 때에 큰 비를 내리게 한 사건은 그 자신이 여호와께 인정받는 신실한 종이었기 때문이다.
가뭄이 선포된 지 삼 년째 되는 해, 하나님께서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에 다시 비를 내리시기 위해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신다. 조금 전 엘리야는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수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과의 마지막 단판승부를 벌였다. 대승한 그는 우상숭배자들을 기손 강가로 끌고 가 모두 처형했다. 아합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살육되는 현장을 목도했다. 사실, 그도 자기가 엘리야에게 행했던 모욕과 저주를 돌이키면서 전전긍긍했는데 의외로 선지자는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아직 당신을 처단할 때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합이 누구인가. 성경엔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중략)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심히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1~33)고 기록한다.
마침내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말한 엘리야는 자연적 현상이 아닌, 믿음으로 반가운 빗소리를 들었다. 그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은거하고 있을 때 이미 그 말씀이 주어졌다.(왕상 17:14) 한편 종일 금식한 아합은 자신의 거처에서 베푸는 흥겨운 잔치에만 관심을 쏟았다. 약 3년 6개월 동안 기근과 흉년 이후 왕이 이제 비가 올 것임을 안 이상, 하늘의 주재자에게 감사의 제단을 쌓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아무런 실존적 고뇌가 없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에 반해 엘리야는 기도하기 위해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나님께서 비를 약속하셨지만 그는 간절히 간구해야만 했다. 그는 아마도 지난날 불로 응답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이젠 물로 응답해 주시길 열렬히 기도했을 것이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처럼 자신의 파수대 위에, 성루 위에 서서 그 분의 응답이 있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기록한 대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18)는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능력있는 기도는 어떤 성격이었을까. 첫째, 엘리야는 군중들로부터 떨어져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고 말씀하셨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일은 물리적 고립 이상을 의미한다. 부연하면 우리가 거룩하신 분께 가까이 나아가 조용히 말씀을 아뢸 수 있도록 우리의 ‘영’(靈)을 고요하게 하며 ‘육’(育)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혼’(魂)을 집중시키는 일이다.
둘째, 엘리야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2) 기도하는 자세다. 수 시간 전 그는 바알 세력에 직면해 바산의 참나무처럼 강했으나 이젠 여린 풀잎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 지존하신 분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자신이 진토와 같은 무가치한 존재임을 행동으로써 고백한다. 모세가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서 신발 끈을 풀어야 했듯 우리도 그 분의 존전 앞에 서서 두렵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향을 올려드려야 할 것이다.
셋째,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한다. 성경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왕상 18:1) 대개 우리는 주님이 그것을 지키실 터인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고 질문한다. 에스겔은 유다의 회복을 위한 축복의 언약을 선포한 후에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뤄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고 가르친다. 엘리야는 믿음으로 큰 비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것을 위해 기도했다.
넷째, 엘리야는 기도하면서 인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응답 여부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그는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왕상 18:43) 하늘에도, 바다에서도 비가 올 것을 알려주는 조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할까. 한 마디로 ‘끝났네!’ 아닌가? 엘리야도 즉시 응답을 받지 못했는데 우리가 당장 응답받기를 원한다면 지나친 과욕이다. 족장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었지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말한 것을 명심하자.
어떤 상황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좌절의 벽이 있는가. 그것은 인내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최종 관문이다. 우유통에 빠진 개구리가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생각해 천천히 헤엄치며 쉬지않고 허우적거렸다. 그 결과 우유 속 지방이 빠져 절로 버터가 되었다. 개구리는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탈무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이윽고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사환)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왕상 18:44)라고 알렸다. 기도는 하늘에 ‘사람의 손 만한’ 그림자를 남겨놓는다. 엘리야는 그게 아주 작은 징조였음에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가루 한 움큼을 가지고도 여러 달 동안 먹게 하신 것처럼 그는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도 크게 하셔서 폭우가 쏟아지게 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환을 통해 왕에게 폭우로 인해 길이 막히기 전에 급히 마차를 타고 내려가라는 전갈을 보냈다. 오래지 않아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다섯째, 엘리야의 기도는 그가 구하지도 않은 것까지 받는 역사가 있었다. 그 즈음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향했다. 다른 한편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열왕 18:46) 그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처럼 믿음의 기도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다. 덧붙이자면 엘리야가 허리를 동이고 신속하게 달려가는 장면은 우리에겐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성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아멘!!
이정미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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