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의 질문 "세상이 어떻게 이래?"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재호 기자]
지난 토요일(10월 29일) 잠을 자려는 순간, 다급하게 아내가 방으로 달려왔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 중 사고가 일어났다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둘은 말없이 영상에 집중했다.
연이은 충격적인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좁은 골목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사고가 발생했고, 많은 수가 심정지 상태라고 했다. 계속 늘어나는 사망자와 부상자 속에서 제발 피해가 최소화 되기만을 기도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핸드폰을 끄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을 영혼이 떠올라 괴로웠다.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다. 무언가에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간신히 아침을 챙겨 먹고 또다시 뉴스를 보았다. 밤 사이 사망자 수가 150명이 넘었다. 사건 현장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고 사망자에 관한 신원 파악 중이었다.
▲ 마음을 추스르려 걸었던 길 사춘기 아들과 마음을 추스르려 걸었던 길 |
ⓒ 신재호 |
그때 마침 아들이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장난을 치며 걸었을 그 길에 침묵만이 흘렀다. 나는 아들에게 이 비극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아빠. 사실 친구가 어제 이태원에 간다고 했었어."
"그래? 어떻게 되었는데?"
"오늘 연락해보니 안 갔더라고. 다행이라고 말은 했는데. 모르겠어. 그런데 아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
아들의 폐부를 찌르는 물음에 열심히 답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떨구었다. 아들과 함께 살아온 14년의 세월 동안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세월호 사건의 비극이 있었지만, 그때는 아이가 상황을 이해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었다. 그저 무거운 집안의 분위기로만 짐작할 뿐이었다.
아이가 바라볼 세상이 두려웠다. 도심 한가운데서 일어난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걸으며 아들에게 계속 말을 했다. 희생된 수많은 사람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은 축제를 즐길 권리가 있었고, 지금 일어난 상황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주변의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우리는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내 말을 아들은 그저 묵묵히 들었다. 제발 머릿속에만 머물지 말고, 마음에까지 모두 닿길 바랐다.
내가 아들과 비슷한 나이일 무렵 성수대교 붕괴, 상품 백화점 붕괴라는 끔찍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TV에서는 계속해서 상황을 보도했다. 생존자가 구조되길 맘속으로 빌었고,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이 교차하는 순간 환희와 탄식을 오갔다. 하지만 반복되는 끔찍한 장면에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성수대교는 집과 가까웠고, 피해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른들 누구 하나 잘못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어른이 돼서야 건설사의 부실시공, 관련 기관의 눈감음이 주요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에 눈앞의 이익만 따졌던 그들에게 뒤늦게 치솟는 분노를 주체못했다. 내가 자고 나란 나라가 그렇게 부끄럽고, 화가 났던 적이 없었다.
아직 이번 사태의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뻔한 말이라도 다음에 또다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명확한 원인 규명과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슬픔에 빠진 온 국민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예우이다.
아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더는 죄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장밋빛 전망을 밝히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살 만한 곳이라는 안도감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길이 끝에 다다를 무렵, 나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살짝 놀라는 눈치더니 이내 내 마음을 받았다. 그 행동은 비단 아이뿐 아니라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더는 아들 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상식이 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비극이 찾아오지 않도록 책임지고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태원 압사 참사' 일본 반응... 정말 착잡합니다
- "토끼 머리띠 남성 탓? 사악한 물타기... 이상민·윤희근 당장 물러나야"
- 이태원 참사, 이 정부는 왜 '죄송하다'는 말을 안하나
- 청년들 울음소리 끊이지 않는 '이태원역 1번 출구'
- '이 경기 꼭 져야 해' 삼성이 당한 망신
- 누가 대한민국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나
- 회사에선 안 되던 '팀플', 축구 할 때는 되더라
- [오마이포토2022] 주호영 원내대표, 이태원 참사 애도 묵념
- 외신 "이태원 참사는 '인재'... 정부가 대비 부족했다"
- 북한, 한미 연합공중훈련에 "강화된 조치 고려할 것"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