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동안 매년 아이들과 동시를 쓴 시인
[안준철 기자]
오늘은 시화를 전시하고/시낭송회가 있는 날입니다.//그동안 쓴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시화를 만들어/운동장 가에 있는 등나무 아래/단단히 묶어 놓으니/지나가던 새도 나비도/열심히 읽고 가고/해님도 달님도 찾아와/고개를 끄덕이고 갑니다./(...)/우리 아이들이 동시를 읽고/늘 동시를 쓰면서/동시처럼/맑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꿈꾸어 봅니다. - '시인의 말'
이상인 시인의 첫 동시집 <민들레 편지>를 '시인의 말'부터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알겠다. 나는 왜 동시를 쓸 수 없었는지를. 그의 첫 동시집을 읽고 마음에 샘물처럼 고이는 것이 있어서 그걸 글로 풀어서 쓰면 짧은 감상문 한편이 어렵지 않게 나오리라 여겼는데 글 한 줄을 쓰기가 어려웠던 이유도.
▲ 이상인 시인의 첫 동시집 <민들레 편지> 표지 3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동시를 써온 이상인 시인이 첫 동시집을 펴냈다. |
ⓒ 안준철 |
이상인 시인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했다. 37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썼으며, 시 낭송회와 시화전을 열고, 문집을 만들었다. 시인 자신도 동시를 한 편씩 써서 참여했고, 교장 선생님이 된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중에 2020년 <푸른사상> 신인 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는 기쁨도 맛본다.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나 과정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보다는 그가 동심에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심의 원형인 아이들 곁에 말이다.
나도 교직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 일이 있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생일시를 써 준 것. 헌데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만난 녀석들이 제 선생을 닮아서 동심으로부터 한참 멀리 있었거나.
입술을 오므리고
필 듯 말 듯 주저하던
개나리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했던 것
예쁜 입술을 열고
말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말할 듯 말 듯 주저하던
개나리들의 그 노란 마음
온종일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내 마음과 겹쳐보며
꼼꼼히 읽어봅니다.
- 「노란 마음」 전문
그의 첫 동시집이 나에게 배달되어 온 날이다. 건지산 편백나무 숲에 가려고 나의 애마 첼로 자전거를 보듬고 나오는데 우편함에 책이 한 권 꽂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배낭에 넣고 편백나무 숲속 도서관으로 갔다.
건강을 생각해서 맨발걷기를 하러 편백나무 숲에 갔던 것인데 의자에 앉지도 않고 거의 서 있는 상태로 책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그렇다고 후닥닥 읽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개구리참외
해거름에 엄마가 사 오신
개구리참외 몇 개
쟁반에서 곧 뛰어오를 듯이
잔뜩 웅크리고 있다.
눈도 코도 다리도
온데간데없이 몸 안에 숨긴
덩치 큰 개구리들
강으로 들로 뛰어나가
개굴개굴 맘껏 노래하고 싶어
기회를 엿보고 있나 보다.
그 마음이 못내 안쓰러워
칼을 드시는 엄마에게
다음에 먹자고 했다.
아빠 오시면 먹자고 졸랐다.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1연과 2연에서 "개구리참외 몇 개/쟁반에서 곧 뛰어오를 듯이/잔뜩 웅크리고 있다"거나 "눈도 코도 다리도/온데간데없이 몸 안에 숨긴/덩치 큰 개구리들/강으로 들로 뛰어나가" 이하의 대목에서 관찰력과 상상력의 상승작용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신 대목은 3연이다. 설명은 생략하겠다. 독자들도 이미 마음이 촉촉해졌을 것이므로. 시 한 편을 더 보자.
아이들이 다 돌아간/빈 운동장/강아지 세 마리 달리기합니다.//반 바퀴쯤 돌더니/두 친구가 멈춰 서서/ 뒤따라오는 친구를 기다립니다.//문득 자세히 보니/왼쪽 뒷다리를 절뚝이며/따라갑니다.//다리 불편한 친구가 다가오자/두 친구가 목을 비비대며/잘했다고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친구도 고개를 끄덕입니다.//이번에 다리 불편한 친구가/앞장서서 운동장 한 바퀴를 마저 돌더니/사이좋게 교문을 나갑니다.
-「강아지 친구들」 전문
이 동시를 읽은 아이와 읽지 않은 아이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대하는 마음이 다를 것 같다. 마음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동시가 이런 아동들의 행동의 변화를 위해 복무해야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시의 마음을 얘기하는 거다. 동심은 아무래도 착한 마음이 바탕이 될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 무릎을 탁 칠만한 재기발랄한 시보다도 이렇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가 여운이 길다.
이상인 시인은 1992년 <한국문학> 신인 작품상을 통해 시인이 되었다. 그 후 <해변주점> <연두빛 치어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등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고,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성실성을 고루 인정받아 송순문학상, 우송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전원범(시인·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은 "명징하고 따뜻한 시로써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이상인 시인의 또 다른 시(동시)를 읽게 되어 색다른 감동이 있다"고 술회하면서, "언어적 진성성과 깊이 있는 울림을 주었던 그의 시처럼 이상인 시인의 동시 또한 동시의 세 가지 요건인 동심, 시적 발견, 단순 명쾌성 등을 잘 갖춘 작품이 아닐 수 없다"고 상찬한다.
날마다 쓰고 또 써도/끝없이 펼쳐진 빈 공책//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쓰고/뿌웅 배들이 힘차게 써 봐도/써야할 빈 줄이/너무 많이 남아서 출렁거리는/푸른 공책//그동안 쓰다가 그만 지쳤는지/오늘은 파도들도/작은 손장난이나 치며 논다. - '바다 공책' 전문
"오늘은 파도들도/작은 손장난이나 치며 논다/"는 구절이 잔잔하면서도 아름답다. 작은 손장난이나 치며 노는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니! 이 시를 읽은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자신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삶 안에서도 얼마든지 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옥근(아동문학가)은 "평생을 학교 현장에서 살아온 이상인 시인이 일궈낸 동시집에는 아이들의 생활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추천사에 적고 있다. '아이들의 생활과 꿈'을 한 편의 시(동시)로 승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이 시인의 '동심'이리라. 아직 나에게는 멀어 보이기만 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한 편의 동시를 쓸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이상인 시인의 첫 시집 <민들레 편지>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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