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두 번의 간 이식… 살겠다는 믿음이 기적을 만듭니다”
아미랑 100회 특집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두 차례의 간 이식을 거쳐 간암을 극복하신 김형규씨를 소개합니다. 간암은 생존율이 1기 50%, 2기 35% 정도인데 3기부터는 급격히 낮아져 15%, 4기 약 6%로 상당히 위협적인 암입니다. 3기 간암을 극복한 김씨의 주치의인 국립암센터 장기이식실장 김성훈 외과 교수를 함께 만나 얘기 나눠봤습니다.
간은 우리 몸의 필수 장기로 해독, 단백질 합성, 호르몬 대사, 소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간은 전체의 약 80%가 망가져도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이미 간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달 ▲식욕 부진 ▲쉽게 피로해짐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간 기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입니다.
이렇듯 간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우리나라 전체 암 사망률 2위에 해당하는 치명적인 암 종입니다. 2020년 국내 간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 당 20.6명입니다. 사회·경제적 활동이 활발한 40, 50대의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병입니다.
간암은 다른 암보다 발병 원인은 비교적 뚜렷합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약 70%) ▲C형 간염 바이러스(약 10%) ▲음주(약 10%)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고 중요합니다.
김형규(65·강원도 강릉시)씨는 2011년 국가 암 검진을 통해 간암 3기를 진단받았습니다. 타 병원에서 2년간 간색전술과 고주파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간 이식을 권유받고 국립암센터를 찾았습니다. 2013년 9월, 간 이식을 받기 위해 김성훈 교수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김씨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경화가 있었으며 경미한 황달을 보였고 배에는 복수가 찬 상태였습니다. 간 양쪽에는 1~2cm에서 크게는 3.5cm 크기의 종양이 5~7개 퍼져있었습니다. 2주간 C형 간염 항바이러스제 복용 후, 10월에 아내의 간을 이식 받았습니다. 다행히 이식은 성공적이었고 아내는 1주 만에, 김씨는 2주 만에 퇴원했습니다.
이식 후 만성 거부반응
그러나 6개월 뒤, 다시 복수가 차서 배가 부어오르고 황달이 나타났습니다. 검사했더니,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재발한 상태였습니다. 약물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혈관이나 담도가 막혀 생기는 합병증이었다면 치명적이었겠지만 김씨의 혈류나 담도 상태는 전부 정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씨의 몸 상태는 점차 악화됐고 황달 수치 역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더 면밀한 확인을 위해 8월에 조직검사를 시행, 만성 거부반응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거부반응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새로 이식된 간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는 것을 말하며 급성과 만성으로 나뉩니다. 급성 거부반응은 대개 이식 후 한 달 내로 발생하며 증상이 경미해 약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만성 거부반응은 이식 후 수개월 및 수년 후에 나타나며 간 기능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약물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치료는 ‘재이식’뿐입니다.
만성 거부반응이 온 김씨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면역력 저하로 인한 폐렴이 발생했습니다. 10월,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이 와 중환자실로 이동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호흡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혈액 속 세균 감염으로 패혈증 쇼크까지 겪었습니다. 당시 의식이 없던 김씨를 대신해 아내의 동의를 받아 간 재이식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기다림 끝 두 번째 이식
간 이식은 주로 가족으로부터 간의 일부를 기증 받는 생체 간 이식과 뇌사자로부터 간 전체 또는 일부를 기증 받는 뇌사자 간 이식으로 나뉩니다. 아직까지는 국내 뇌사 기증자의 수가 이식대기자 수보다 적어 이식이 필요한 시기에 공여 받는 것이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수술이 생체 간 이식으로 진행됩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2020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간 이식 1543건 중 74.4%가 생체 간 이식, 25.6%가 뇌사자 간 이식입니다. 김형규씨 역시 중환자실에 입원한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빨리 간 이식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 중 적합한 공여자가 없어 우선 뇌사자 대기 등록을 했습니다. 김씨의 순번이 되었지만 뇌사자 공여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더 지체되면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 중이던 김씨의 20대 조카가 한국으로 돌아와 흔쾌히 간 공여에 동의했습니다. 2014년 10월 15일 ‘혈액형 불일치’ 간 재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공여자와 환자의 혈액형이 동일하고 체격이 비슷해야 간 이식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증 가능한 가족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아도 간 이식이 가능합니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혈액이 몸에 들어오면 항체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피가 굳으면서 혈전이 생깁니다. 이는 혈액순환을 저해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간 이식 2~3주 전에 공여자 혈액형에 대한 항체 생성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습니다. 이식 1주 전에는 환자의 혈액을 빼낸 뒤 원심분리장치로 혈액형에 대한 항체를 제거한 다음 몸에 다시 투여하는 혈장 교환술을 진행합니다.
위 과정을 거쳐 수술을 진행했지만,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호흡할 정도로 회복이 더뎠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술 20일 만에 간 기능이 회복된 겁니다. 황달 수치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술로 인한 담도 합병증이 발생해 담도를 넓혀 담즙 배출을 돕는 수술을 추가로 진행한 뒤, 2014년 12월 4일에 드디어 퇴원했습니다. 지금은 간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면역억제제를 최소로 복용 중입니다. 합병증이나 재발 없이 8년 째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길었던 간암 극복과정에 대해 김형규씨와 주치의 김성훈 교수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풀었습니다.
-완치 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두 번째 간 이식을 받고 퇴원한 뒤, 요양 차 강릉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다 보니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고 사과나무도 기르면서 자연 속에서 많이 활동하게 됐습니다. 건강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지냅니다. 가끔 무리한 활동을 하면 남들보다 조금 빨리 피로해지기는 합니다만, 두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할 겸 면역억제제 처방도 받을 겸 병원에 방문해 몸 상태를 체크하면 늘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심정은?
“저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이고 대범한 성격입니다. 간암 3기를 진단받았을 때도 죽는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된 의술과 김성훈 교수님에 대한 믿음이 강했습니다. 암이라는 게 ‘죽는다’ 생각하면 죽을병이 됩니다. 저는 좋아질 거라고 반복적으로 자기 세뇌를 하며 암 투병을 이어갔습니다.”
-암 극복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교수님께 먼저 확인을 받았습니다. 다른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이 먹고 싶으면 먼저 교수님께 물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또 국립암센터 간이식 모임인 우생회(우리생명회) 강릉 지회에 소속돼 사회적 유대를 많이 느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나서 담소를 나누고 서로의 건강상태를 확인합니다. 제가 암센터에 입원해 있을 당시, 우생회 회원들이 방문해 위로의 말도 해주고 경험자로서 여러 조언을 해 줘서 큰 힘이 됐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받는 위로는 생각보다 더 든든합니다. 다른 병원에도 이런 모임이 있을 테니 다른 간암 환자분들도 참여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제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아내의 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것입니다.”
-치료 중 어려움은 없었나요?
“두 차례의 이식 모두 생체 간 이식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를 절제해 환자에게 이식하는 건데요. 환자뿐 아니라 공여자의 안전까지 철저히 고려해야 합니다. 뇌사자 간 이식은 담도나 혈관 등을 길게 절제할 수 있지만 생체 간 이식은 최소한의 절제로 새로운 신체에 이식해야 해서 더 까다롭습니다. 특히 두 번째 이식은 환자와 공여자 간 혈액형 불일치 이식으로 더 고난도 수술에 해당됩니다. 당시 김형규씨의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폐 상태 악화로 인한 폐렴, 패혈증이 발생해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웠습니다. 산소 포화도가 낮아서 저산소증으로 뇌 손상이 오면 이식에 성공하더라도 평생 침대에 누워 지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강력한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저 역시 ‘진인사대천명이다’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간암 치료 현황은?
“아직까지 간암은 조기에 발견해 수술적인 치료(절제, 이식)를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고주파 열치료나 에탄올 주입술 등도 간암 초기에 대표적으로 시행됩니다. 간암이 더 진행된 경우에는 암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을 막는 경동맥 화학색전술을 실시합니다. 최근에는 양성자 치료, 감마나이프 등 방사선 치료와 면역항암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치료법이 등장해 치료 성과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간암 환자가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술, 담배를 무조건 멀리해야 합니다. 또 지방간이 간 경변을 일으키는 등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피로나 스트레스가 간수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은 금물입니다. 모든 식품은 간에 영향을 줍니다. 정체불명의 식품 섭취도 유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요즘은 의사들이 의학정보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저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나서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전제 하에, 전문적인 의료진 여러 명과 충분히 상담하고 치료 방식을 결정하시길 권합니다. 환자별로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맞춤형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요, 경험이 많은 다양한 전문 의료진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치료법이 많이 발전해 있으므로 좌절 마시고 끝까지 희망을 갖고 치료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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