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장악' 美대법원, 흑인 등 배려입학제 '위헌' 결정 내릴까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대학 입학은 소수에게 이익을 주면 다른 사람에겐 불이익이 되는 제로섬게임이다."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다양성을 실제로 반영해야만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31일(현지시간) 흑인 등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대학 입학제도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합헌 여부를 두고 심리를 개시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대거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면서 보수 위주로 재편된 현 대법원의 위헌 결정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어퍼머티브 액션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가 차별당했다고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연이어 심리했다. 흑인 등 특정 인종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또 다른 차별이 되고 있다는 것이 SFA의 주장이다.
앞서 SFA는 2014년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패소했었다. 당시 법원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라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6년까지도 이 판례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재편되면서 이번에는 다른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약 5시간에 걸친 심리에서도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이 제도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들은 입학 결정에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교육적 다양성'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2016년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냈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꽤 많이 들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역시 대학 입학이 한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다른 집단에게는 반드시 불리해지는 일종의 "제로섬게임"이라고 주장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존 로버츠 대법원장 역시 '인종 중립'적인 방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 이미 제도 폐지에 대한 대안을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진보파인 대법관 3명은 어퍼머티브 액션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SFA 주장과 달리 대학이 입학 심사에서 인종뿐 아니라 40개의 요인을 고려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미국인이 된다는 의미, 그리고 미국의 다원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의 한 부분은 (대학 같은) 기관들이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다양함을 실제 반영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FA는 사립대학인 하버드대가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차별해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역시 인종 등과 상관없이 법의 보호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SFA를 대표하는 패트릭 스트로브리지는 이날 "정부가 배심원단에 앉힐 사람, 결혼 대상, 아이들이 다닐 학교 등을 결정할 때 어떤 요소를 고려하든 피부색은 그중 하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NYT는 "대법원에서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인종을 고려한 입학제도가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대다수 판사들은 수십년에 걸친 판례를 재고하고 위헌 결정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위헌 판결시 각 대학에서 흑인, 라틴계 학생의 비율이 줄어들고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의 수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소수인종 우대 조치가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성적, 시험점수에만 의존할 경우 흑인, 라틴계 학생의 극적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통상 판결까지는 약 3개월이 걸리지만 이번 사안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은 내년 6월께야 이뤄질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 내 여론도 제도 폐지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다. WP와 조지 메이슨대 공공행정대학원 샤르스쿨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는 배려입학제도를 금지하는 데 찬성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플로리다, 아이다호, 미시간,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워싱턴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소수인종 배려입학을 금지한 상태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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