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겠다” 가슴 치는 이태원 참사 목격자들

김은빈 2022. 11. 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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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옆 ‘심리지원 부스’ 설치… 무료 상담 제공
“구할 수 있었는데” 죄책감 호소하기도
전문가 “동영상 시청 자제… 일반 시민도 심리지원 필요”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 현장상담소'에서 시민이 상담받고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전국민적 상흔을 남겼다. 사상자 가족들, 목격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도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보건복지부는 분향소 옆 상담 부스를 설치하는 등 심리지원에 나섰다.

“가슴 떨림·불면·우울” 트라우마 증상 호소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옆에는 ‘심리지원 부스’가 설치됐다. 유가족, 부상자·동행자, 목격자 등의 심리지원을 위해서다. 복지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 안내 문자를 보내 대면·전화 상담을 권했다. 

안내 문자를 받고 심리지원 부스를 찾은 이윤서(24)씨는 “언덕길에 사람이 쏟아질 당시 현장에 있었다. 몇 초만 늦었어도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며 “너무 충격적이라 자꾸 생각난다.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사후 대처가 아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태원 사고 당시 외상을 당한 친구와 동행한 이씨는 “심리지원 안내 문자를 받아 상담을 받았는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심리지원 외에는 다른 대처가 없어서 아쉽다. 특히 친구는 외상이 있었는데도 어디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몰라 발품을 팔아야 했다”고 밝혔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전 김정도씨가 SNS에 올린 글. ‘오늘 아무 사고 없기를’이라고 적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호소하는 목격자도 있었다. 30대 김정도씨는 “사고가 난 골목길 반대편에 있었는데, 여자 3명이 넘어져 있어서 일으켜 세웠다. 밀려오는 인파 때문에 사람이 땅에 밟혀 있는지도 못 보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때 사고가 날 것으로 예상해 다른 골목으로 빠져나왔다”며 “‘(내가 나섰다면) 좀 더 사람을 구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는 사고일 걸로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전직 군인이라 사건사고 현장을 다수 목격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힘들어서 심리지원 부스를 찾았다”며 “지인에게도 사고 관련 영상을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너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수시 지원이 끝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태원을 찾았다고 밝힌 신지아(18)씨도 “다른 길로 가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SNS에서 본 뒤 너무 힘들어서 잠도 2시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며 “그때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하던데 확성기로 알리거나 하지 않아 몰라서 가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희생자들을)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최모(30)씨 역시 “당시 이태원에 도착하니 이미 사고가 난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그 사고가 생각이 났다. 가슴이 아직도 떨린다. 다시는 이태원을 가진 못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얘들아 미안하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오열했다.   사진=김은빈 기자

참사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들은 SNS, 언론보도 등으로 목격한 사고 장면에 대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치갑(65)씨는 “뉴스에서 이태원 참사 장면을 접하고 가슴이 떨리고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세월호 사건이 겹쳐보였다”면서 “어제도 이태원 사고 현장에 가 눈물을 흘렸다. 어른으로서 제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인숙(63)씨는 ‘얘들아 미안하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오열했다. 그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딨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아이들을 또 보내야 하나”라며 “기성세대로서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래 친구들의 사망 소식에 조문을 온 시민들도 있었다. 이모(23)씨는 “이태원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또래 친구들이 떠나가 마음이 아파 심리치료를 받으러 왔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넘어가지 않는 상태”라며 가슴을 쳤다.

대학생 유다건(22)씨는 “같은 나이로서 참사가 일어났는데 분향소를 오지 않는 게 도리어 잘못된 일이라 생각해서 조문을 왔다”며 “많은 피해자가 저희 또래이다 보니 대학 내에서도 애도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원우(25)씨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추모 장소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광주에서 새벽 6시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밝힌 정씨는 “희생자들과 같은 나잇대라 마음이 아파 방문했다”며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갑작스러운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이어 “SNS상에서 (사고 장면) 동영상이 공유되고 있어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국가적 차원에서 심리지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광장 분향소의 심리지원 부스에서 제공한 키트.   사진=김은빈 기자

분향소 옆 심리지원 부스 설치… 상담 후 센터 연계도

서울광장 분향소에 마련된 심리지원 부스에는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등 치료를 원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부스에서는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심리지원팀 전문요원들의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후 필요한 경우 지역 정신건강센터로 연계해주는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심호흡 방법 등 심적 안정화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리플릿과 물품도 제공하고 있다. 

이해우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선 유가족이나 목격자 등 현장에 직접 노출된 분들을 상담하고 있다. 일반 시민 중 영향을 받으신 분들은 민간단체에서 지원하겠다고 해서 연계하는 방식으로 심리지원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반응 정상… 일상복귀 어렵다면 전문가 도움 받아야”

전문가는 일시적인 두근거림 등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서도 자극적인 영상 시청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꼭 사고 현장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충격을 받는 건 당연하다”며 “물론 유가족, 피해 당사자, 목격자, 구조활동을 하신 분들의 심리지원이 우선시되긴 하겠지만 마음이 불편한 일반 시민들의 심리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홍 교수는 “슬플 상황에 슬픈 건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에 대해 ‘내가 약한 사람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가슴이 뛰는 등 스트레스 반응이 오면 심호흡 통해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독 힘들고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어렵다면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나 각 시군구 정신건강센터에 연락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여전히 정신건강 병원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지만, 걱정하지 말고 내원해 상담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관한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해서는 “현재 시청하는 것이 좋지 않은 자극적인 영상과 콘텐츠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사고 동영상은 사실 안 보는 것이 좋다. 일상생활을 멈추고 거기(이태원 참사)에만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동영상 시청 등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겠다면 시간을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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