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밀톤호텔 불법 건축이 '3.2m 병목' 만들었다
참사는 폭 3.2m 골목에서 일어났다. 이태원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몰렸던 인파가 호텔 옆 50m 내리막 골목길로 내려오면서 뒤엉킨 곳이 그 좁은 구간이다. 골목 위쪽은 폭이 5m 이상이지만 아래쪽에는 3.2m로 좁아진다. 전문가들은 일종의 병목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인 10월 30일 오전 현장을 방문해 "거리의 폭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고, "3.2m"란 보고를 받자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폭이 4m 이상이어야 하고, 해당 지역 건축물현황도에도 도로 너비는 4m로 나와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이하로 좁아졌을까. 바로 ‘불법건축물’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건축물현황도에 따르면 해밀톤호텔은 대부분 건축한계선을 넘어 지어졌다. 건축한계선은 도로에 접한 부분에 건축물을 건축할 수 있는 선이다.
그런데 해밀톤호텔은 골목길 중간쯤에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건물 출입구(계단 포함)가 설치돼있고, 골목 하단부에는 분홍 철제 가벽(假壁)이 도로에 바로 붙어 10m가량 이어져 있다. 이번 참사 때 이 계단 위 공간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위기를 모면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건축사는 "이 호텔은 대부분이 건축한계선을 넘어 지은 흔치 않은 건물"이라며 "특히 골목길 중간 출입구는 건축한계선을 침범한 명백한 불법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해밀톤호텔이) 오래된 건물(1970년 준공)이라 변경된 도시계획 등이 반영되지 않아 건축선을 초과한 상태로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용산구청은 공개공지 점유 및 도로 점유, 그리고 불법 건축물 해당 여부 등 자세한 사항에 대한 질의에는 31일 자정까지 답을 주지 않았다.
도로 경계선에 바짝 붙여 설치된 분홍 철제 가벽도 통행 흐름의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현행 법률 및 조례상 해밀톤호텔과 같은 대형 건축물은 통행 흐름 등을 방해하지 않도록 인접한 도로의 가장자리선(경계선)으로부터 3m 거리를 두고 지어야 한다. 하지만 해밀톤호텔이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도로 경계선에까지 가벽을 설치했고, 그 결과 폭 3.2m 도로가 탄생한 것이다. 이동호 인천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골목 밑으로 내려올수록 호리병처럼 단면이 축소되면 병목 현상으로 통행 흐름이 떨어지는 것은 역학적으로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건축사는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일지라도 사후관리는 현행 법령에 맞춰 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밀톤호텔은 이 가벽을 그동안 쇼핑몰로 통하는 통로로 활용해 왔다. 해밀톤호텔 관계자는 "10여년 전부터 가벽을 설치했는데, 용산구청으로부터 단속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포털사이트 지도 서비스를 통해 확인해보니 2010년에도 비슷한 형태의 가벽이 설치돼 있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이 가벽에 대해 "천정(지붕)이 없는 형태라 건축물로 보긴 어려워 불법증축물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지방자치단체 건축인허과 담당 공무원은 "'달아낸 건물'이라고도 하는데, 가벽을 설치해 실제 건축물처럼 활용하면서도 지붕을 없애 규제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전을 위한 도로 폭이 최소 4m 이상이고, 그 골목은 이태원 내에서도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임을 고려할 때 용산구청 측이 가벽 철거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건축학과 안형준 전 교수는 "법으로 규정된 4m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지자체에서 '사람이 몰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식의 경고 문구라도 가벽에 표시했어야 한다"며 "사고가 일어난 골목길 반대편 상가의 경우에도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됐다면 인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축물대장상 반대편 상가 곳곳이 '위반건축물'로 노란 딱지가 붙어있다. 골목 맞은편 일부 상가들도 도로 일부를 불법으로 점유한 것이다.
해밀톤호텔도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로 등록돼 있다. 이 건물은 쇼핑몰과 호텔이 있는 본관과 한 커피전문점에 통째로 임대한 별관(B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면 두 건물 모두 위반건축물이다. 특히 별관의 경우 건물 전면 부분(49㎡)이 지난 2017년 불법 증축됐고, 용산구청이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해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함종선·김원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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