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검사와 피의자 관계 같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수사 대상으로 보면 협치 불가
북핵·경제 위기, 이태원 참사
여야 관계마저 역대 최악
야당은 무조건 민생 협조하고
여권은 정치력 발휘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관계를 보면 일반적인 여야 영수 관계가 아닌 것 같다. 긴장과 대립을 하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아예 만나기 싫어한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거대 야당 대표가 아니라 피의자로 보고 있는 것일까.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의 눈에는 이 대표 범죄 혐의에 대한 견적이 쫙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관계가 이러니 여야 관계도 좋지 않다. 과거에는 여야가 TV 카메라 앞에서 싸우더라도 끝나면 따로 만나 밥도 같이 먹고 물밑협상도 하면서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 여야 정치인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으로 대화나 협상이 완전히 단절됐다고 말한다. 하필이면 북핵 위기 등으로 6·25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라고 할 때, 경제가 IMF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할 때, 여야 관계까지 최악이다. 북한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핵무기를 쏠듯이 위협하고 있다. 어느 대기업 CEO는 “매출이 떨어지는 모양새를 보고 처음에는 계곡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태원 참사까지 겹쳐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고 민심이 흉흉하다.
여야 관계가 최악인 것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시정연설이 야당의 불참 속에 이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민주당 잘못이 가장 크다. 동시에, 보이콧을 유도라도 하듯이 하필 시정연설 하루 전날 당사를 압수수색한 검찰과 여권의 전방위 압박이 야당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안보와 민생을 챙겨도 모자랄 텐데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분위기다. 예산안부터 제대로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다. 민생입법 처리나 구조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도 없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가 속전속결로 끝나면 그나마 낫겠다. 그러나 여권의 전략상 내후년 총선까지 계속되고 협치는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갖고 있고, 이 대표에게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이 대표 수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주당에서 이 대표만 외과수술식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대표를 대선 후보와 당 대표로 선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당은 이 대표와 신경 하나하나가 연결된 이재명당이 됐다. 이 대표만 도려낸다는 것은 인체에서 뇌만 도려내려는 것과 같다.
여야가 싸우면서 입으로는 민생을 말한다. 그러나 누가 진짜로 민생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민생이 두 쪽 나더라도 계속 싸우려는 쪽이 가짜다. 솔로몬 재판을 보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싸움을 포기하는 쪽이 진짜 엄마다. 아이가 죽든 말든 끝까지 싸우려는 쪽이 가짜다.
야당은 검찰 수사가 야당 탄압이라며 싸우더라도 민생을 살리는 일에는 협조해야 한다. 여권은 검찰 수사에 박차를 가하더라도 민생을 살리기 위해 야당을 끌어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역할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소신과 고집, 신념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법치라는 신념 윤리에 치우쳐 협치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국정 운영 성패는 결국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법치와 부패 척결이 뭐가 문제냐며 협치를 외면하는 것은 문재인정부 시절 가난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올려주는 것이 뭐가 나쁘냐며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하다 정책 실패로 끝났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면서 야당의 일방적인 협력만 요구했을 뿐 협치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야당의 반대는 어느 정권에서나 상수다. 정치력을 발휘해 야당을 설득하고 협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권의 몫이다.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책임은 결국 정부 여당이 지게 돼 있다. 혹시라도 국정 운영이 꼬였을 때 야당 때문에 그랬다고 책임 윤리에서 벗어나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새로 입주하는 한남동 관저에 야당 대표들은 빼고 5부 요인 정도만 부를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야당 대표는 빼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이 대표를 관저로 초청할 필요가 있다. 검사와 피의자 관계가 아니라면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길 바란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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