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괜찮아’라는 말의 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직원 모집 포스터에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쓰여있는 게 마음을 움직였어요. '돈 벌어야지'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는 많이 들었지만 '괜찮아'라는 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어요." 얼마 전 저녁 늦게 TV 채널을 돌리다가 한 청년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는 '괜찮아'라는 문구에 이끌려 카페 직원 자리에 지원한 참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원 모집 포스터에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쓰여있는 게 마음을 움직였어요. ‘돈 벌어야지’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는 많이 들었지만 ‘괜찮아’라는 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어요.” 얼마 전 저녁 늦게 TV 채널을 돌리다가 한 청년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는 ‘괜찮아’라는 문구에 이끌려 카페 직원 자리에 지원한 참이었다. 모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4년간 스스로를 방안에 가뒀던 은둔형 외톨이(은톨이)였다.
방송 내용은 이랬다. 제작진은 은톨이들만 일하는 ‘곰손카페’라는 이름의 카페를 준비했다. 이 카페에는 출입문이 없다. 대신 벽면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손님이 벨을 누르고 주문서를 작성하면 복슬복슬한 곰 발바닥 모양의 탈을 낀 팔이 쑥 튀어나와 주문을 받고 커피를 건네준다. 손님을 직접 대면하는 긴장과 불안감을 덜어주면서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적응을 돕는 장치다.
곰손카페의 은둔 경력 최고참은 11년 동안 은톨이로 지낸 자몽이다.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 사람들을 피해 숨고 전화번호도 바꿨다고 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는 3개, 카톡 친구는 동생 한 명뿐이다. “영화를 보면 엑스트라 있잖아요, 그게 내 운명이 아닌가 싶었어요.” 또 다른 여성 직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에 집착했고 거울이 싫었다고 했다. 쭈뼛대며 마스크를 벗은 우리의 얼굴은 반짝반짝 예쁘기만 했다. 공황장애가 있는 민발은 1분 거리의 편의점에 가는 것도 두려워 수돗물만 먹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저러고 싶어서 저러는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겐 너무 쉬운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방송에는 곰손카페의 원조로 히키코모리(은톨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한 일본 오사카 쿠마노테(‘곰의 손’이라는 뜻) 카페가 주로 소개됐지만 그보다 앞선 곳은 중국 상하이의 히니치조우 카페다. 이곳 직원은 모두 장애인이다. 히니치조우 직원이 수화로 “동굴에서 나온 것을 환영한다”며 응원을 전하는 장면이 방송에도 등장했다. 히니치조우는 일본어로 비(非)일상이라는 뜻인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있는 힘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도전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했다.
2부작인 방송은 1부에서 카페 영업을 시작한 첫날까지 전파를 탔다. 손님들은 카페의 독특한 콘셉트에 신기해하고 곰손이 귀엽다며 즐거워했다. 벽 뒤에서 숨죽여 반응을 확인하던 은톨이들은 쏟아지는 사진 요청에 힘을 얻어 곰손을 뻗어 V자를 만들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손님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주문이 밀려들자 보조개가 파이게 웃으며 “행복해”라고 작게 혼잣말하는 민발의 모습이 최고의 장면이었다.
이들 네 명의 은톨이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의 아버지였다. “딸을 위해서”라며 방송에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에 응한 아버지는 딸의 생일날 방문을 사이에 두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축하했고 “답장이 없어도 괜찮다”며 크리스마스 카드 양쪽 면이 꽉 차도록 딸에게 사랑한다고 썼다. 그 카드가 우리가 방 밖으로 나오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는 제작진의 말에 아버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부모는 뭘 했냐는 섣부른 비난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모습에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프로그램 2부가 예정됐던 지난 일요일에는 이태원 참사 뉴스 특보가 계속됐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애끊는 심정은 감히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가지 않게 말리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자책만큼은 비통함에 더하지 않았으면 한다. 희생된 젊은이들의 안식과 몸과 마음을 다친 많은 이들의 회복을 기원한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태원서 변당한 내 딸 장기기증도 못한대요” 다시 무너진 엄마
- “한동훈 아냐? 이 XXX야”… 조문 간 한동훈 욕한 시민
- “‘아이 좀 받아달라’ 외치고 울타리 넘어 탈출했다”
- “어디야 제발…” 애타는 엄마 문자에 끝내 대답 못한 딸
- 이태원 참사 생존자 “남녀 4~5명이 뒤에서 ‘밀어라’ 말해”
- “우리 애기 찾으러 왔어요” 엄마 울자 경찰도 눈시울
- CPR 나선 의사 “홍대 가 술 더 마시자던 구경꾼, 끔찍”
- “기다리세요” 같은 골목 한 여성 외침에 정체 풀렸다
- 인파 속 갑자기 벽 기어올라…‘참사’ 피한 외국인 [영상]
- “밀침에 휘청”… 경찰, CCTV 영상 확보·조사 착수[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