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10년 만에 행복감 느꼈다”… 우울증 전자약 보급 확산
뇌전두엽 기능 정상화하는 방식
약물 부작용 없이 집에서도 활용
건보 급여 안돼 비용은 천차만별
‘전자약(electroceutical)’은 약물 대신 전기나 빛, 자기장, 초음파 등을 이용해 질병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 분야다. 전자(electronic)와 약(pharmaceutical)을 합친 말이다. 특정 부위나 표적 장기에 선택적으로 적용해 신경 회로를 자극하고 대사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신체의 항상성을 회복·유지하는 원리다.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는 약물의 경우 부작용 우려가 있는데 비해 전자약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약물을 대체하거나 병용해 시너지를 내는 전자약 개발이 활발하다. 글로벌에선 비만, 우울증, 변실금, 편마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뇌전증, 파킨슨병, 뇌종양 등은 물론 최근 코로나19 치료 전자약까지 10여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10월 처음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승인을 받은 우울증 치료 전자약(마인드스팀)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을 경험했거나 약물 복용 두려움이 있는 환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전자약은 지난 6월 보건복지부의 신의료기술 유예 대상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건강보험 비급여 적용을 받아 병원 내 처방과 집에서의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마인드스팀은 ‘경두개 직류 자극법(tDCS)’을 이용한 것으로, 머리에 착용한 전기자극 장치를 통해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우울증의 원인인 저하된 뇌전두엽 기능을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2020년 국내 대학병원 6곳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6주간 매일 30분씩 단독 적용한 결과 우울 증상이 사라지는 관해율이 62.8%로, 기존 항우울증약(약 50%)보다 높게 나왔다.
의사는 몇가지 심리검사와 뇌파검사 등 환자 진료 후 병원용 장치에 전류의 강도, 자극 시간 및 빈도 등의 맞춤형 처방 정보를 입력한다. 환자는 처방 내역이 담긴 휴대용 모듈과 전기자극을 전달하는 헤어밴드를 집에 가져가 이용한다. 재택(在宅) 치료와 병원 내 치료는 선택 가능하다.
중점 처방 대상은 우울증 환자 중 항우울제 부작용을 크게 겪었거나 우울증을 진단받았지만 약을 복용하기 꺼려하는 청소년이나 가임기 여성이다. 물론 처음 치료를 시작하는 우울증 환자 중에서도 병원에 오기 힘들거나 약물이 부담되는 경우 처방받을 수 있다.
보통 1주일에 3번, 회당 30분씩 6주 동안 처방되는 것이 권장되지만 환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환자가 전자약을 사용하면 기기에 실시간 기록되며 병원 방문 시 언제, 몇 분간 사용했는지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정부의 비급여 고시 이후 마인드스팀의 의사 처방은 6000건을 넘었다. 이 전자약을 도입한 의료기관도 전국 49곳(의원 39곳, 정신병원 5곳, 종합병원 2곳, 상급종합병원 3곳)으로 증가 추세다. 지난 6월부터 우울증 치료에 마인드스팀을 적용 중인 이지브레인광화문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박진수 원장은 31일 “학업이나 업무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군에서 약물 대신 우울증 전자약 치료를 많이 희망했다”고 밝혔다. 회계사인 여성 A씨(42)는 높은 업무 강도로 인해 우울감,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발표 불안, 소리에 대한 강박 등을 호소하며 이곳을 찾았고 마인드스팀 10회 정도 처방받은 후 증상이 나아져 치료를 중단했다. 로스쿨 대학원생 B씨(24) 역시 우울증, 집중력 저하로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인드스팀 7회 치료 후 증상이 개선됐다.
마인드스팀을 개발한 와이브레인 이기원(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박사) 대표는 “이 기기는 경증 및 중등증(중간 단계)의 주요 우울장애 환자의 우울 증상 개선 치료에 허가받았지만 우울증은 불안증 등 다양한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함께 논의되며 기본적으로는 우울증 치료에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이 심한 환자들의 자해나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받을 수 있다. 연세하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신현우 원장은 “수차례 자해와 극단적 시도를 했던 20대 여성의 경우 여러 항우울제를 교체해 가며 최대 용량까지 사용해 봤으나 차도가 없다가 마인드스팀을 기존 약물과 2주 가량 병용한 후부터 증상의 호전을 보였다”면서 “이후 자해나 극단적 시도를 하지 않게 되면서 환자가 ‘10년만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는 500여명의 환자 중 20여명이 마인드스팀을 이용하고 있다. 신 원장은 “약물 치료 저항성 우울증(TRD) 환자에게 주로 처방하는데, 효과가 있는 이들은 만족해하며 20회 정도 치료받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비용 부담으로 7회 정도 받고 중단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기기는 비급여인 만큼 의료기관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현재 우울증 치료제는 항우울증약을 제외하고는 치료 옵션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 비율이 높다. 약물의 경우 환자에 따라 메스꺼움, 소화불량, 졸림, 어지러움 등 부작용을 호소하거나 애초부터 복용에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마인드스팀은 약물 부작용 없이 머리에 쓰기만 하면 되고 병원에서 제품을 대여받아 집에서 직접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도곡삼성정신건강의원 이경은 원장은 “우울증은 꾸준한 치료가 매우 중요하고 특히 의료기기를 이용한 치료는 지속해야 효과가 나타나는데, 마인드스팀은 병원에 오지 않고도 집에서 볼일을 보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어 환자의 순응도가 높다”고 했다.
다만 피부가 민감한 일부 환자들은 이마에 착용하는 헤어밴드 영향으로 이마가 붉어지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기기를 제거하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우울증을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해당 업체와 함께 ‘블루밴드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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