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 기독교를 ‘이단’으로, 바울을 ‘이단 괴수’로 본 까닭은…

2022. 11. 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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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판별 기준·주체 어떻게 정할 것인가 <2>


‘교회’라는 조직의 이단 판별과 정죄는 항상 정당한가. 자기집단 보호 목적의 이단 정죄도 유효한가. 교회사는 진리성 부재의 이단정죄가 무효임을 알려준다.

기독교 출범기부터 정통신앙은 종종 ‘이단’으로 매도됐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대역병과 같은 이단 운동으로 보았다. ‘나사렛 이단’ 집단이라고 폄하했다.(행 24:5)

유대교 장로들과 변호사들은 기독교라는 이단 무리들을 총독에게 고소했다. 예수의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고 했다. 바울도 자신이 이단이라고 일컫지는 무리의 사도임을 자인했다.(행 24:14)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이단 집단으로, 바울을 ‘이단의 괴수’로 본 까닭은 유대교의 관점을 이단 판별과 정죄의 주체와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바울에게 유감을 가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바리새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기독인들이었다. 그들은 열성적으로 율법을 지켰다. 그들은 바울이 디아스포라들에게 두루 다니며 다음 세 가지를 가르쳤다고 생각했다. ①모세를 배반하라 ②유대인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 ③유대교 관습을 지키지 말라.

바울은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이 들은 것은 소문이며, 자신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유대인 전통을 따른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형제들의 지혜로운 권유를 따라 성전에서 정결례를 드림으로써 자신에 대한 유대 기독교인들의 오해를 풀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 개종자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행 15:19) 이 결정은 율법을 지키고 전통을 따름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 유대교 배경을 지닌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의미를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단 판별의 주체가 기독교 진리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출범 단계에서 유대교 율법주의, 에피쿠로스 철학의 쾌락주의, 스토아 철학의 금욕주의를 경계했다.(행 17:18) 지중해 연안에 편만한 플라톤주의와 이원론 세계관에 기초한 영지주의를 배격했다.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지니셨음을 부인했다.(요이 1:7) 예수가 육체를 지니지 않았으므로 그의 출생, 수난, 죽음, 부활 이야기는 모두 허구라고 보았다. 영지주의 ‘적그리스도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도 부인했다.(요일 2:22)

바울은 이단에 대해 단호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갈 5:20~21)고 했다. 베드로는 교회 안에 이단을 몰래 끌어들여 부활한 주를 부인하고 기독교를 파멸로 몰고 가는 자들을 견책했다.(벧후 2:1) 디도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 3:10)고 했다.

사도들의 이단 판별과 정죄의 기준은 기독교 진리성이었다.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포함한 성경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근거해 있었다.

교회는 진리성이라는 이단 판별의 기준에 따라 마르시온주의와 몬타누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2세기 중반에 등장한 마르시온은 유대교적 요소를 담은 성경들은 제거하고, 복음서 일부만을 편집하여 정경이라고 했다. 유대교가 말하는 창조자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한 악신이라고 했다. 마르시온주의에 대한 응전으로 기독교는 정경 66권을 확인했다.

몬타누스주의는 AD 150~170년 경 소아시아 지역에 성행했다. 성령에 대한 그릇된 사상, 거짓계시 운동, 영적 체험, 시한부 종말론 등을 외쳤다.

몬타누스주의는 일종의 영적인 개혁운동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저명한 라틴 신학자 터툴리아누스는 정통교회의 영적인 무기력함과 도덕적 해이를 탓하면서 몬타누스교회로 전향했다. 몬타누스주의의 이단 여부에 대한 학자들의 시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니케아공의회(AD 325년)는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리우스주의는 예수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는 오늘날의 ‘여호와증인회’와 동일한 기독론을 믿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술수, 계략, 정치세력과의 결탁 등으로 정통과 이단의 자리를 바꿨다. 공의회 3년 뒤에 파면당한 아리우스의 감독직 사면운동을 펼쳤다. 교회를 이용하여 맹렬히 정통신앙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안디옥 총회(AD 328~329년)는 아리우스의 감독직 복권 결의를 했고, 이단자를 받아들였다. 황제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성직자들과 평화주의 성향을 지닌 다수의 성직자들은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 태도를 취했다.

교회의 티루스총회(AD 335년)는 정통신앙의 선두주자 아타나시우스를 성토하고, 그의 알렉산드리아교회 대감독직을 해임시켰다. 예루살렘으로 장소를 옮겨 속회한 이 총회는 아타나시우스를 이단자로 몰아 추방하기로 결정하고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받아들였다. 중도파 화평주의자들은 이 모임에서도 대세에 편들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사후,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정통신앙을 지지하는 새로운 황제 아래서, 우여곡절 끝에 알렉산드리아교회의 감독으로 복직했다(AD 341년). 뒤바뀐 정통과 이단의 자리는 콘스탄티노플공의회(AD 381년)가 열리는 시점에 이르러 정상화됐다.

교회는 이처럼 정통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이단을 정통으로 뒤바꾼 전례를 지니고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단판별 기준을 바꾸었다. ‘교회’라는 자기 집단의 이익, 기득권 유지, 구성원의 이탈을 막을 목적으로 행하는 이단 정죄는 호소력을 지닐 수 없다. 대어(大漁)는 놓아주고 피라미만 정죄하는 결과를 보일 수 있다.

초대교회가 겪은 이단정죄의 경험은 진리성 중심의 이단 논의와 판별이 절실함을 일깨워 준다.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진리에 기초한 정죄만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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