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준의 시시각각] 이 고비를 넘어야 진짜 선진국 된다

예영준 2022. 11. 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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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배치했어도 막지 못했을 것"
안전 책임진 행안부 장관 발언 맞나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쟁 멈춰야
예영준 논설위원

그날 밤 처음 받은 뉴스 속보 문자는 “이태원에서 심정지 추정 환자 50여 명 발생” “호흡곤란 81건 신고”였다. 곧이어 “윤 대통령, 신속 구급 긴급 지시”란 문자가 날아왔다. “이게 뭐지? 누군가 유독가스를 살포했나, 혹시 화생방 무기를? 그렇다면 전쟁인데….” 한동안 상상의 나래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TV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아비규환의 현장은 재난 영화를 보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초현실적이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초대형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전쟁이 터졌다는 소리만큼이나 믿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3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1990년대 초중반 사회부 기자들의 일상은 말 그대로 동분서주였다.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주저앉고, 지하철에서 불이 났다. 그저 ‘빨리빨리’가 미덕이었던 압축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압축의 틈새에 우리가 빠뜨렸던 그 무엇들이 시차를 두고 뻥뻥 터져나오기 시작한, 이를테면 진실의 집행유예 기한이 다하면서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우리의 민낯이었다. 문제는 언필칭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다는 지금까지도 ‘후진국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온 국민이 자괴(自愧)하고 분노했지만 8년 만에 또다시 참사가 일어났다. 실은 피해자·희생자 숫자만 작을 뿐이지 참담한 사고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얼마 전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의 제빵공장에서 종업원이 숨진 안전사고만 해도 1960~70년대 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이번 사고는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이 있음을 알려준다. 세계 어느 나라든 불가항력(不可抗力)적 사고는 피할 수 없다. 그건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대비 여하에 따라 사고의 횟수를 최대한 억제하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그는 “통상과 달리 소방·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걸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배치 인력을 늘렸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불가항력적 상황을 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안전’이란 글자가 이름에 들어가는 부처의 장관이 할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놓고 대비하는 것과 무방비 상태에서 사고를 맞는 것은 천양지차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경찰 투입 숫자가 왜 그것밖에 안 됐느냐고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과거 데이터로 동선을 예상하고 진출과 진입 통로를 분리하거나 일방통행을 설정하는 등의 사전 조치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사고가 난 골목길은 초저녁부터 인파가 몰려 이미 밤 9시 전부터 통행량이 한계수위에 이르렀다. 분명 이런 사실을 CCTV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진입을 억제하는 현장 정리도, 분산을 유도하는 안내방송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운 건 국가적 재난을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야당의 움직임이다. 정부·여당을 몰아붙여 정권 교체의 원동력으로 삼는 데 성공했던 세월호 사건의 기억을 가진 야당은 국민 애도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정치 공세에 나설 것이다. 야당 당직자가 이태원 참사를 청와대 이전과 연결지으려 한 게 그 전조다. 만일 이태원 사고가 나던 그날,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사정으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게 늦었더라면 ‘박근혜 7시간’에 못지않게 공격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정쟁은 재난 앞에서 멈춰야 한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영령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정부,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8년 전 세월호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또 이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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