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의 한반도평화워치] 국민 간 우호 토대로 한·베트남 협력 지평 넓혀야
수교 30주년 맞은 한·베트남
경제면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질 좋은 노동력, 낮은 임금, 방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에 진출하여 큰 이익을 거두어 왔다. 그러나 중국은 빠른 기술 발전과 자본 축적, 가격·기술 경쟁력을 겸비한 거대 기업들의 탄생으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국이 되었다. 투자 환경이 과거보다 매력적이지 않은 중국을 대체해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이 대거 베트남에 진출함에 따라 이제 한국은 베트남 최대 투자국이 됐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지만, 인구 9800만명의 베트남이 중·미·일에 이어 한국의 4번째 교역 상대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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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은 30년 전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문제 삼지 않고 수교
최근 한국에 비판적 보도와 SNS 늘어나는 상황은 우려스러워
올해 7~8% 성장 예상, 1인당 GDP 20배 느는 등 위상 높아져
연례 외교·통상 장관 회의 열어 협력 확대하고 갈등 줄여야
」
안보 면에서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과의 수교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반면 미·중 대결 격화 속에서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는 국내 정치적·이념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조화보다 충돌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남베트남(월남)을 도왔고, 북한은 전투기 조종사 등을 보내 북베트남(월맹)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제 베트남은 한국과 민감한 안보 이슈 없이 발전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반면 피폐하고 고립된 북한과는 별다른 연결고리 없는 소원한 관계가 됐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
전반적으로 한·중 관계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불만,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 문제, 중국의 강경한 대내외 정책 등으로 인해 축하 분위기의 수교 30주년이 되지 못하고 양국 국민 간 우호 감정도 크게 낮아졌다. 한·베 간에는 상대방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보도나 SNS 등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크게 민감한 문제 없이 양호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베트남이 코로나 규제를 신속히 해제해 양국 국민의 왕래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수교 30주년을 경축하는 기운이 고조되어갈 전망이다.
한·베 수교는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밝은 미래를 향해 협력해 나가자는 정신으로 이뤄졌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1964~73년 한국군 연인원 30여만명 참전, 5000여명 사망)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실용주의적 결단이다. 이는 한·베 수교와 이후 양국 관계를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
베트남 지도부는 20년에 걸친 전쟁과 75년 통일 이후 지속한 폐쇄적 사회주의 경제에서 86년 개혁개방(도이모이 정책)으로 전환할 때까지 피폐한 나라를 재건하고 성장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해 투자를 유치하는 게 유일한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특히 베트남이 외세의 지배와 전쟁이란 역사와 유교 문화를 공유하면서, 짧은 시간에 선진 경제를 이룩한 한국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을 촉진했다.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전체 무역 규모 중 한·베 무역이 40% 이상을 차지한다. 또 한국의 대베트남 투자는 대아세안 투자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동남아 전역에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온 일본을 누르고 한국이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 된 것은 괄목할 만하다.
삼성이 베트남 수출의 20% 이상 차지
삼성·LG 등 대기업뿐 아니라 봉제·신발 등 중견기업까지 다양하게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삼성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이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 가전 등을 포함하면 삼성 제품이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 대표 기업의 베트남 집중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베트남을 여행한 한국인은 430만명으로, 태국·필리핀을 누르고 가장 인기 있는 동남아 여행국이 됐다. 15만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에 거주하고, 한국에는 18만명의 베트남인 공동체가 있으며, 6만명의 베트남 여성이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국 내 베트남 유학생은 6만여명에 달해 중국 유학생(5만명)을 누르고 제일 많아졌다. 베트남 대학의 한국어학과는 영어·일본어학과와 함께 인기가 있다.
베트남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 사례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가 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만큼 한·베 관계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싱가포르 등과 함께 경제적으로 개방된 정책을 펴는 나라로, 한·중·일, 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양한 다자 자유무역협정에 가입돼 있다.
이러한 개방정책으로 인해 베트남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국으로서, 애플 등 세계적 기업들이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가 방심하면 일본이 최대 투자국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은 올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7~8%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 국력 상승에 양국 갈등 가능성 커져
올해는 미래 30년의 지속가능한 한·베 관계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첫째, 보다 깊고 일관성 있는 한·베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고위급의 정례적 협의체가 필요하다. 한·베 연례 외교장관·산업통상장관 회의나 2+2(외교장관+산업통상장관) 회의 발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별한 관계인 한·베 협력의 지평을 넓히고 관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방지한다는 관점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2+2회의는 러시아산 무기가 많은 베트남과 방산 협력 확대 가능성을 논의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둘째, 베트남이 진정으로 원하는 협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최대 개발협력(ODA) 수혜국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개발 경험 등 노하우 전수보다는 실질적으로 베트남에 도움이 되는 보건의료, 인프라, 연구교육시설 건설 등에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 또 기술 이전과 함께 현지 한국 기업이 베트남 기업의 부품 사용을 늘려 달라는 베트남의 요망에도 진지하게 대응할 시점이 됐다.
셋째, 한국이 베트남 발전에 기여하면서 국익을 추구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미·일·호주, 베트남과 긴밀한 협의·협력을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일과 호주 등이 공동으로 베트남에 개발협력을 제공하거나 경제산업기술 분야에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반도체·배터리·의료·환경·AI·인프라 건설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한·미·일 제휴는 베트남도 크게 환영할 것이다. 이는 군사안보 이외 분야에서 한·미 동맹의 지역적 확장이어서 한·미 관계, 한·미·일·호 협력 증진에도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넷째, 한·베 국민 간 우호·신뢰를 심화해 양국 국민이 하나의 공동체란 의식을 심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베트남은 수교 초기의 베트남이 아니다. 베트남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718달러로, 30년 전(179달러)보다 20배 늘었다. 국력 상승에 따라 베트남 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며, 양국 기업 간 이해 충돌과 국민 간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베 국민 간에 부정적 감정이 싹트지 않도록 하는 관리하는 것은 양국 정부뿐 아니라 국민의 책임이기도 하다.
국민감정 악화는 외교에 부담
우리는 한·중, 한·일 국민 간 감정이 악화해 오랫동안 우리 외교의 부담이 된 점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소한 갈등이 쌓여 큰 감정적 마찰로 비화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문제와 맞물리면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겸허한 자세로 베트남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베트남 국민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도록 만드는 길이다.
올해 한·베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에서 ‘포괄적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될 전망이다.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라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한·베 관계는 한국의 진취적·창의적·초당적 외교가 결실을 본 성공 사례로, 앞으로 더 큰 발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베트남 축구를 놀랍게 발전시킨 ‘박항서 매직’처럼 지난 30년 한·베 양국은 ‘한·베 매직’으로 불릴만한 관계 발전을 이룩했다. ‘한·베 매직’이 미래 30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와 국민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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