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최후의 심판’에 숨어있는 자화상

2022. 11. 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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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 자화상(自畵像)에 대한 말인가? 아니, 그건 너무 1차원적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것을 지은 예술가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글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실은 토스카나 지역의 속담이란다. “한 번 당한 모욕으로 백 번 입은 은혜를 잊으며, 모욕한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고,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 안젤로 폴리치아노(1454~1494)의 『피렌체 이야기 모음집』에 등장하는 코시모가 한 말이다. 이 글이 쓰인 시기(1477~1479)와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가 엇비슷하기는 하지만, 이 말을 굳이 ‘자화상’에 국한하여 해석하거나 적용할 것만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고 하기에 앞서 ‘해를 입은 것은 오래 기억하고 입은 선행은 쉽게 잊는’, ‘타인의 잘못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의 본성을 콕 집어 말한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자화상이라고 하면 대체로 고흐나 렘브란트 등 위대한 화가들이 스스로 그린 초상화를 떠올리지만,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스쳐 지나가듯 자기 얼굴을 슬쩍 담아놓은 그림도 꽤 여럿 있다. 라파엘로는 피타고라스에서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르는 위대한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아테네 학당’(1510)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보티첼리는 ‘동방박사의 경배’(1475) 오른쪽 끝에 자기 얼굴을 넣었다. 심지어 보티첼리의 시선은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감상자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물론 수줍은 듯 모자를 쓴 머리와 한쪽 눈만 살짝 보이는 ‘야경꾼’(1642) 속의 렘브란트도 있다.

「 연민과 회한이 가득한 카라바조
빈 껍데기로 그려진 미켈란젤로
삶의 모든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

반면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은 이와 사뭇 다르다. 다윗은 순수했던 소년 시절의 그이고 그 손에 들려있는 골리앗의 머리는 살인자로 전락한 현재의 그이다. 그래서인지 골리앗의 머리를 내려다보는 다윗의 표정은 구약성서의 기록과는 달리 승자의 당당함이 아니라 패자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이 그림은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제재에 화가가 자신을 투영한 철저히 개인적인 그림이다. 몰락한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회한(悔恨)이다.

또 다른 예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1541)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등장하는 391명의 인물 중 특별히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 또는 나다나엘이라고도 함)이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제자로 택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다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한 그를 그린 성화나 성상은 실로 참혹하다.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었으니…. 밀라노 대성당에 있는 그의 성상(聖像)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벗겨진 자기 살가죽을 망토처럼 걸치고 있고 ‘최후의 심판’ 속의 그는 빈 자루처럼 축 늘어진 그것을 한 손에 들고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성상과는 달리 그의 온전한 얼굴과 축 늘어진 빈 껍질에 붙어있는 얼굴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속이 비어 일그러진 그 얼굴이 성 바르톨로메오가 아니라 미켈란젤로 자신이기 때문이란다. 순교한 성인의 빈 껍데기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으면서 미켈란젤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껍데기만 남은 자신에 대한 연민? 천국을 향한 간절한 소망? 아니면 자기 혐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의뢰받은 해가 1533년, 착수한 해는 1535년, 완성은 그로부터 6년 후인 1541년. 당시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각기 58세, 60세, 66세. 그러니까 ‘하늘의 명을 깨닫고(知天命)’ ‘남의 말을 모두 온전히 이해하고(耳順)’ ‘무엇을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從心)’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과 인격을 갖출 때와 얼추 들어맞는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난데없이 공자(孔子)의 회고를 소환하는 것이 좀 생뚱맞지만, 나이에 걸맞은 생각과 삶의 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차이 없지 않겠나 싶어 떠오른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이 있다”(링컨)라는 말과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라는 말이 한가지로 읽힌다. 아니, 화가가 자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그린 모든 것이 그 자신이라는 말로 읽힌다. 삶 가운데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도 어김없이 내 자화상 어느 한 부분을 채우거나 덧칠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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