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핼러윈 조커 사건이 남긴 것
“분장을 하신 분은 전철에 탈 수 없습니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 한 사람이 검은 망토를 둘러 쓰고 개찰구를 지나려는 승객에게 다가와 말했다. 핼러윈데이(10월 31일)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밤, 일본 도쿄(東京) 게이오선 시부야((渋谷)역에서다. 이날 시부야는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을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승차 거부를 당한 젊은이들은 “아, 집에 어떻게 가지? 지우고 와야겠네”하며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게이오선이 올해 핼러윈 기간 중 ‘가장(假裝)고객 승차 금지’를 내세운 건 지난해 핼러윈에 일어난 열차 내 칼부림·방화사건 때문이다. 당시 조커 분장을 한 24세의 남성 핫토리 교타(服部恭太)가 차 내에서 승객들에게 칼을 휘둘러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열차 안에 불을 붙이면서 승객들이 혼비백산해 탈출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열차회사들은 객차 내 CCTV 설치를 서둘렀고, 이번 핼러윈 기간 중엔 비상시 탈출법 등을 담은 안내문을 만들어 승객들에게 배포했다.
지난달 29일 밤 한국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후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기사들이 나온다. 기자 역시 ‘인파가 몰렸지만 큰 혼란이 없는’ 일본의 핼러윈 취재를 위해 이날 시부야로 향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일본도 과거에 여러 사고를 겪었다. 지난해 조커 방화 사건이 그랬고, 2018년 핼러윈에는 시부야에서 술에 취한 청년들이 자동차를 부수고 난동을 피워 문제가 됐다. 일본 경찰이 인파가 밀집한 현장에 대한 경비 체제를 대폭 강화한 것도 11명의 희생자를 낸 2001년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 불꽃놀이 압사 사고 이후의 일이었다.
이 시점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과거의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철저한 노력 아닐까 싶다.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일부 승객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분장한 고객의 지하철 승차를 아예 금지한 것도 하나의 예다. 시부야 핼러윈 현장에서도 경찰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루라기를 불며 “멈춰 서지 말라” “모여있지 말고 이동하라” 끊임없이 주의를 당부한다. 취객의 난동이 일어난 후 시부야구는 아예 조례를 제정해 핼러윈 기간 노상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금지해버렸다. 근처 편의점이나 식당 등도 자발적으로 술을 팔지 않는다.
사고로 잃어버린 아까운 생명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이어진다. 우리 앞에 벌어진 비극을 반추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할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그 역시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이영희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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