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폴란드 원전 수출, 생태계 회복 계기 삼아야
폴란드와 LOI로 13년 만에 원전 수출 청신호
탈원전에 시간 낭비…미국과 통상마찰 피해야
해외 원자력발전소 수주 경쟁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어제 폴란드전력공사 등과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LOI가 곧 원전 수주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건 분명하다. 폴란드와는 지난 8월과 9월 방위산업 물자의 대규모 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원전 수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최종 계약까지 이뤄진다면 13년 만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원전을 수출하는 첫 사례도 된다.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지만 원전 수출대국의 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탈원전을 내세우며 국내 원전 생태계를 고사 직전으로 내몰았다. 국내에선 원전 건설을 중단한다면서 외국에는 한국형 원전을 팔겠다고 뛰어다니는 모순이 심각했다. 우리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글로벌 원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다.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선 무엇보다 원전 생태계의 복원이 시급하다. 지난 8월에는 한수원이 이집트 원전 사업에서 3조원대 물량을 따내기도 했다. 수주는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한국형 원전 수출이 아니라 러시아형 원전에 대한 보조기기 공급이었기 때문이다.
폴란드 원전 수주는 아직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경쟁 상대인 미국 업체의 움직임이 변수다. 지난달 말 폴란드 정부는 첫 원전 사업자로 미국 업체인 웨스팅하우스를 선정했다. 이번에 한수원이 LOI를 체결한 건 민간 중심의 원전 건설로 별개의 사업이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미국 법원에 한수원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의 해외 원전 수출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원전은 반도체와 함께 한국이 세계 정상급 기술을 확보한 분야다. 미래산업 먹거리 차원에서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원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다. 특히 한국형 원전 수출을 본격화하기 전에 통상 마찰의 불씨를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3국 원전 시장 진출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급부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럴 때 한국과 미국이 해외 원전 시장에서 손을 잡는다면 두 나라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다. 이번 폴란드 원전 수주가 최종 성사돼 국내 원전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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