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간 게 잘못? 비난 안돼” 퍼지는 자제 목소리

조민영 2022. 11.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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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탓하는 일각 반응에
온라인 맘카페 등 “누군가의 친구, 가족, 자녀였을 아이들”
생존자 향한 “당신 잘못 아니다” 위로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77길에 31일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좋은 곳 가서 젊음을 마음껏 즐기고 행복하길.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가 놓여져 있다. 최현규 기자

지난 29일 밤 핼러윈을 앞두고 인파가 몰리며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놓고 일각에서 희생자를 탓하는 비난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맘카페, 지역 커뮤니티, SNS 등을 중심으로 “젊음을 즐기고 거리에 나간 것이 죄가 아니다”며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10~20대 희생자들을 보면서 “내 아이가 저기 있었을지 몰랐단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수험생에, 코로나 팬데믹에 억눌려 있다 이제 겨우 풀러 나간 젊음을 어떻게 비난하나” 등의 의견들이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간발 차로 이태원 안 간 딸…우린 그저 피했을 뿐”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시민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딸을 둔 A씨는 31일 “우리 딸도 원래 친구들과 이태원에 간다 했는데 코스튬 배달이 안 와서 못 갔다”면서 “사고 다음 날 아침에 집에 있는 딸을 보고 안도하면서도, 친구들 괜찮은지 패닉된 딸을 보면서, 정말 남 얘기가 아닌가 싶어서 또 철렁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핼러윈 파티 가는 건 (엄마로선) 반대였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놀아본 적 없다고, 처음이라는 딸 말을 아마 끝까지 거절하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거기 간 애들이 특별한 애들이 아니었겠구나. 정말 함부로 비난하지 말았으면”이라고 말했다.

20대 자녀를 뒀다는 한 누리꾼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광장이 붉은 옷을 입은 인파로 빼곡히 채워진 사진을 올리면서 “그런 날 굳이 이태원 갔다고 피해자를 탓하기 전 2002년을 생각해보자. 이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고 반문했다.

그는 “당시 이태원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다. (다만) 사망사고가 나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사고 원인은 규명해야겠지만, 우선은 조의 표하고 싶다. 추억 만들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소설가 겸 드라마 작가 소재원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향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젊음을 즐기는 것이 잘못된 건가”라면서 “거리 나간 것이 잘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누리꾼은 네이버 카페에서 “사고 충격 지나고 든 생각은 마흔 넘은 나도 이렇게 놀고 싶은데, 저 젊은 친구들 얼마나 놀고 싶었겠냐였다. 코로나 이후 성인되고 대학생 된 친구들에게 첫 시간제한 없는 핼러윈 얼마나 기대했겠나”라고 적었고,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며 안타까워했다.

“모두 누군가의 가족, 자녀, 친구…기도해주길”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어린이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로 학부모들이 많이 활동하는 지역별 맘카페나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도 비난이나 비방을 자제하고 함께 애도해달라는 공지문이 잇달아 올라왔다.

한 지역 카페는 공지문에서 “(피해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자녀이고, 친구”라면서 “그저 모두 무사하길 마음 깊이, 신께 기도해주시길 바란다.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내 자식이었을지 모른다며 많은 이들도 공감을 표했다.

어린 연령 부모가 많이 이용하는 맘카페 맘스홀릭 베이비에서도 “몇 년 뒤였으면 내 아이가 저기 있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남 일 같지 않았다” “결혼 전이라 마지막 이태원 즐긴다던 친구가 연락이 안 돼 밤새 맘 졸였다” 등의 반응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회원은 “저도 첨엔 술 먹고 놀러 갔다는 식으로 안 좋은 시선으로 봤었다”면서 “그런데 사고 현장 영상 속 아이들 (얼굴) 보는데 정말 그냥 젊은 청년들, 아무것도 모르고 즐기러 간 아이들이었다.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 정말 안타까운 사고라는 걸 생각하고 다 같이 애도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적었다.

미안해하는 생존자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77에서 추모의 꽃이 놓여있다. 최현규 기자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처참했던 사고 현장에 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위해서라도 비난, 힐책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인 이선민씨는 지난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쟁터가 아닌 일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죽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밤”이라면서 참사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특히 “참사는 사람을 가려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이라면서 생존자들을 향해서도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며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친 초대형 참사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긴 사건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역시 수백명이 숨지고 다친 사회적 재난으로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 등 직접 당사자는 물론, 지역사회와 이 사건을 지켜본 전 국민이 모두 심리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누차 강조하고 있다.

한국임상심리학회도 이와 관련 성명을 내고 “트라우마 회복에는 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비방이나 혐오 발언은 초기 안정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트라우마 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학회는 특히 고통 속에 있을 생존자들을 위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등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로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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