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좌파 대부’ 룰라…중국 일대일로 합류 가능성

박형수, 김홍범 2022. 11.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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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일인 지난달 30일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주먹을 쳐 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 뒤는 부인 로산젤라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룰라·77) 브라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룰라는 당선 확정 뒤 상파울루 티볼리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늘의 유일한 승리자는 브라질 국민”이라면서 “나와 노동자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외쳤다. 그는 “2억1500만 브라질인 모두를 위해 통치할 것”이라면서 “두 개의 브라질은 없으며, 브라질은 위대한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다. 이어 “증오로 물든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브라질 대선은 이념 성향이 정반대인 전·현직 대통령 간 대결 구도로 치러지며 전 국민이 좌·우로 나뉘는 분열을 보였다.

브라질과 국제사회의 시선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선거 승복 여부에 쏠렸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자투표 시스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복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쳐왔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뒤 나타난 혼란상이 브라질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인종 차별과 여성에 대한 막말로 국민의 빈축을 사왔다. 또 “코로나19 백신이 에이즈 감염 확률을 높인다”고 발언하는 등 안일한 대응으로 팬데믹 대처에 실패했다.

바이든 “브라질과 협력 지속하길 고대”

룰라의 승리로 브라질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재집권에 성공한 룰라가 브라질 외교의 우선순위를 미국이 아닌 ‘역내’와 ‘중국’으로 이동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브라질이 룰라의 지휘 아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과거 룰라의 집권 시기(2003~2010)에 중국과 브라질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 등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중국은 브라질에 가장 많은 해외 투자액(13.6%)을 쏟아부으며 공을 들였다. 타티아나 프라제레스 브라질 전 무역장관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중국과 교역량을 줄이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반중(反中) 정서로 양국 관계를 확장·심화시키지도 않았다”면서 “룰라 정권은 중국과 경제뿐 아니라 정치·산업 등 다방면의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롭고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선거를 거쳐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양국의 협력을 지속하고 함께 일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브라질 빈곤층은 룰라의 당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브라질 민간 연구기관 FGV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 인구의 29.6%에 해당하는 6290만 명이 월 소득 487헤알(약 13만1200원) 이하로 살았다. 2019~2021년 960만 명이 새로 추가된 수치다. 이는 룰라 집권기와 대비된다. 당시 빈곤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2900만 명 이상이 중산층에 새로 입성했고, 원자재 가격 급등 등 행운도 따르며 2002년 세계 13위였던 브라질의 경제는 2010년 7위까지 상승했다.

룰라는 가난을 몸으로 체험하며 성장했다. 그는 1945년 전기·수도도 없는 가난한 농가에서 7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전부다. 땅콩 장수와 구두닦이 등을 전전하던 그는 14살에 선반공이 됐지만, 3년 뒤 공장에서 밤샘 작업 도중 동료의 실수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룰라는 한 인터뷰에서 “의사는 손가락 전부를 잘라냈다. 나는 손가락이 없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주 주먹을 쥐고 걸었다”고 회상했다.

브라질 경제 되살리는 게 과제

그는 금속노조 활동을 시작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75년 10만 명을 이끄는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이 됐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을 결성해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61.3%의 득표로 대통령이 됐다. 조지 소로스는 “(급진 좌파인) 룰라가 대통령이 되면 브라질은 국가 부도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지난 실패를 통해 ‘영원한 야당’이 아닌 ‘대통령 룰라’의 길을 택했다.

이번 대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데서 보듯 그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다. 그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2011~2016년 재임)은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인한 경제 붕괴와 부패 의혹 등으로 2016년 탄핵당했다. 룰라 본인도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수감됐다가 2019년 11월 580일 만에 석방됐다.

그는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며 악재가 이어진 브라질 경제를 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룰라가 과거 실용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가 공공지출 효율화 등은 별로 언급하지 않으며 기업가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수·김홍범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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