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업고 1㎞ 뛰었다"…'살려줘' 딸 문자에 이태원 달려간 아빠

이보람, 김은지 2022. 10. 3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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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녀, 자차로 병원 데려다 줘…비용도 안 받고 사라졌다”

한 60대 남성이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는 딸의 연락에 현장으로 달려갔던 사연을 전했다.

31일 뉴시스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남성 A(62)씨는 사고 당일 밤 11시 무렵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에 간다던 20대 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딸은 다급한 목소리로 “옆에 사람 다 죽었어”라고 말했다. A씨는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에 계속 통화가 끊어지면서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압사 사고 추모공간에 술과 꽃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딸은 문자메시지로 “나 죽다 살았는데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며 “이태원에서 압사사고 났는데 집 가려다가 맨 밑에 깔렸다. 살려줘. 나 무서워”라고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이태원 부근에 도착했는데 교통 통제로 인해 도로가 막혀 차에서 내려 1.5㎞ 가량을 뛰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60대 남성 A씨가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한 당시 20대 딸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 뉴시스

A씨는 딸이 있는 파출소에 도착한 뒤 딸의 몸상태를 살폈다면서 “파출소 안에 우리 딸을 포함해 네 명 정도가 누워 있었는데 딸의 상태가 빨리 병원으로 이송돼야 할 정도로 안 좋았다. 그런데 사망자가 너무 많아 경찰과 소방이 그쪽을 먼저 대응하면서 딸 순번까지 오려면 최소 서너 시간은 걸릴 것으로 보였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사망자 수습이 우선이라서 배정이 안 될 것 같다고 하는데 딸은 되게 고통스러워하고 완전히 도로는 통제돼 일반 차가 못 다니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택시라도 탈 수 있는 쪽으로 나가려고 딸을 등에 업고 1㎞ 넘게 뛰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이태원에선 인파와 교통통제 등으로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길을 지나는 차량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순간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A씨에게 다가와 병원으로 태워주겠다고 말했고, 이들은 A씨 부녀를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줬다고 한다.

A씨 딸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뉴시스


하지만 병원은 앞서 실려온 사상자들로 다른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들 남녀는 A씨 부녀가 사는 곳 인근의 분당차병원까지 두 사람을 태워줬다.

A씨의 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끝에 고비를 넘겨 일반 병실로 옮겨진 상태다. 병원 측에서는 A씨 딸이 사고 당일 장시간 압력에 노출되면서 근육 손실로 인한 신장 손상을 입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고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됐던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를 했다.

A씨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내용을 올려 젊은 남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지금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서너 정도 시간이 걸렸다.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약소한 돈이라도 비용을 치르려고 했는데 한사코 안 받고 다시 건네주고 돌아갔다”고 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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