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보름전 100만명 이태원 찾았다…그때와 다른 딱 하나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31일 오후 6시 기준 사망자 154명과 부상자 149명(중상 33명) 등 총 303명의 희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 장관의 발언에 정치권에선 여야 가리지 않고 질타가 쏟아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31일 “주최 측이 없는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관련 매뉴얼은 없다”며 “여러 날에 걸쳐 넓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일시에 집결하지 않는 행사에서 통상적인 위험을 예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관할지자체인 용산구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지만, 쏟아지는 ‘책임론’ 비판에 박희영 구청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예고 없이 폐쇄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박 구청장이) 사고 수습 대책에 전념하고 있고, 애도 기간이 끝나면 다시 (계정을) 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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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경찰 ‘어쩔 수 없었어’ 한목소리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와 관할지자체, 경찰 모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지역축제 개최 시 중앙행정기관·지자체단체·주최 측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반면 이번 참사는 소상공인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 행사'에서 발생한 탓에 책임 소재가 모호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가 불분명했단 것이 이들의 공통 주장이다. 한마디로 사각지대라는 것이다.
행안부는 지난해 3월 재난안전법에 의거한 지역축제장 안전 관리 매뉴얼을 발간했다. 이 매뉴얼엔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지역 축제로 ▶순간 최대 관람객 1000명 이상 ▶산·바다·강 등 장소 개최 ▶불·폭죽 등 폭발성 물질 사용 행사일 경우, 지자체·경찰·소방 등이 세워야 하는 안전관리 지침이 세세하게 담겼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행사의 경우 ‘순간 최대 관람객 1000명 이상’ 요건은 갖췄지만, 행사 주최가 없단 이유로 매뉴얼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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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전가하는 모습”…당국의 안전관리 의무는 상식
그러나 대형 인파로 인한 돌발 상황 가능성 예측이 충분히 가능했던 만큼 매뉴얼 적용 대상 여부를 떠나 지자체나 경찰 등이 선제적으로 안전 관리에 적극 나섰어야 했단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핼러윈과 같은 특정 주최 단체가 없는 행사여도 인파가 몰리는 게 예상되는 경우 경찰은 지자체와 연계해 교통정리 및 보행로 확보 등을 실시하고, 지자체는 사전 계도 활동을 진행한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주최 없는 행사란 이유로 책임을 전가하는 듯 보이는데, 그럴수록 정부나 지자체, 경찰 등이 더 면밀하게 상황을 관리했어야 했다”며 “경찰은 (사고 후) 구조대가 진입할 통로를 확보했어야 했고, 정부나 지자체는 외국 사고 사례 등을 참고해 (이전에) 사고를 예방할 시스템을 갖췄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방 경찰청 소속 한 경찰 간부는 “경찰 직무집행법상 극도의 혼잡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데 인파가 집중될 상황이 충분히 예상됐던 만큼 더 많은 경력을 투입해 안전 관리 역할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상민 장관은 31일에도 “지난해보다 행사 방문객은 30%가 늘었는데 경찰 병력 배치는 40%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경찰청은 지난해보다 52명 많은 137명을 이번 핼러윈 행사에 투입했다고 밝혔지만,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지난해 10만명에서 올해는 13만명으로 늘어난 상황이어서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더 거세졌다.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50)씨는 “경찰이나 공무원 등이 사전에 더 많이 현장 배치돼서 안전요원 역할을 했으면 이렇게 큰 사고가 있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16일 같은 위치(이태원)에서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하고, 서울시·용산구가 후원한 ‘이태원 지구촌 축제’는 이번 참사와 양상이 달랐는데 당시 100만명(용산구 추산)이 이태원을 찾았지만, 경찰·소방 등 기관별 역할 분담이 이뤄지면서 특별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태원 일대 차도를 통제해 골목으로 몰리는 시민을 분산했어야 한단 의견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아예 ‘차 없는 거리’로 차량을 통제했으면 유동인구 밀집도를 훨씬 떨어뜨렸을 것이다”고 짚었다. 인파가 멈추지 않도록 일방통행을 안내해야 한단 점도 강조되는데 홍콩의 경우 지난 30일과 31일 핼러윈 기간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하는 ‘란콰이펑(蘭桂坊) 광장에서 일방통행을 실시하도록 했다.
시민 안전 관리에 대한 정부·지자체·경찰의 의무는 법상 의무가 아닌 ‘상식’이란 비판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시민 보호·안전관리 의무는 관련 법령을 따질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경찰의 존재 이유”라며 ”관련법 또는 매뉴얼 유무를 따질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로, 법이나 매뉴얼에 없단 이유를 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는 뒤늦게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호 중대본 1본부 총괄조정관(행안부 재난관리안전본부장)은 31일 브리핑에서 “이번 같은(이태원 참사)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리·개선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운채·이창훈·장윤서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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