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울음소리 끊이지 않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손가영, 권우성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 권우성 |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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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 불과 30m 떨어진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현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흰 국화꽃과 소주잔, 손 편지로 가득하다. 이곳은 지난 30일 오후 어느 한 시민이 헌화한 국화꽃 한 송이를 계기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공간이 됐다.
31일 이곳엔 나이, 국적, 성별을 불문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연고가 없지만 국화꽃이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 온 시민, 사고 생존자, 친구가 희생된 외국인들까지 1번 출구는 하루 종일 인파로 붐볐다.
사고로 친구 4명을 잃은 이승헌(20)씨는 황망한 마음에 사고 현장을 왔다가 두어 시간 넘게 떠나지 못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미국, 이란, 호주 국적의 외국인 4명이었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알릴 방도가 없어 어제 대사관을 다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이씨가 오열을 반복하자 헌화를 하러 왔던 한 시민은 그에게 청심환을 쥐어줬다. 50대 여성 채아무개씨는 "아까부터 너무 많이 울어서 걱정이 돼 인근에서 사왔다"며 "'네가 힘을 내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다. 친구들은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라 말하며 이씨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이번 참사로 희생된 미국인 2명의 사진을 붙였다. 재미교포는 한국에 오지 못한 희생자 부모의 요청으로 추모공간에 사진을 붙이게 되었다고 밝혔다.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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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이기동(50)씨는 재미교포 커뮤니티에 올라온 희생자 지인의 요청을 보고 이곳을 찾았다. 사고로 희생된 미국인 청년 2명의 유족을 대신해 추모 장소에 이들을 위한 글을 붙여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이씨는 희생자 SNS의 사진을 출력해 추모 공간에 붙이며 "20~21살이라 들었고, 한양대 교환학생이라고 전해 들었다"며 "이태원은 나도, 내 20대 자녀들도 한국에 놀러 올 때마다 자주 놀러온 곳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집트에서 온 마호메드(33)씨는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 1명과 우스베키스탄에서 온 친구 1명을 잃었다며 비통해했다. 스리랑카 출신 피해자는 3개월 전 결혼해 현재 부인이 임신 2개월 째였다는 소식도 전해지며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꽃, 술, 추모 글이 적힌 종이를 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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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쌓이는 손 편지의 상당수는 대다수 피해자들과 같은 나이대의 청년이 쓴 편지다. '상명대 20학번'이라 밝힌 한 사람은 "서로는 모르지만 저와 같은 청년이자, 돈 벌기 위해 노력한 청년이자,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쓰던 청년. 이제는 자유를 갖고 하고 싶은 걸 맘껏하기를"이라고 썼다.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세상은 누군가의 죽음에 충분히 슬퍼한 시간이 없습니다. 세상은 잔인하고 이기적입니다. 그러한 세상에 저항합니다. 여러분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아파하고 그리고 슬퍼하고 싶습니다. 저는 꼭 꿈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부디 평온하시길." (24살 이영준씨가 쓴 편지)
사고 당일 이태원에 있던 대학생이라고 밝힌 이는 "희생자들도 분명 저처럼 바쁘고 지치는 일상을 영위하던 중 친구들과 재밌게 핼러윈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고자 이태원에 들렀을 것이다. 누가 이렇게 비참한 사고를 예견하고 나왔을까요"라며 "희생자 죽음은 유족과 지인들의 탓이 아닙니다. 부디 크게 자신들을 책망하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참사 현장 인근 한 상인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 배, 감, 밥, 국 등으로 차려진 제사상을 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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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지..." (사고 현장 인근 옷가게 사장 A씨)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사고가 일어난 골목에선 작은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 골목에서 옷 가게를 하던 가게 주인 A씨가 제사상을 차려 골목에 놓으려다 경찰 제지를 받았다. 배, 감, 밥, 국 등이 올려진 조촐한 제사상이었다.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 식당 입구에 '이태원 핼러윈데이 사고 관련 식품접객업소 안전 관리 강화 요청’ 용산구청 공문과 ‘11월 5일 애도기간까지 휴점 합니다’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안내문이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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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일대 반경 300m 내의 가게들은 네댓 곳 중 하나가 휴업일 정도로 황량한 분위기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소속 가게들은 사고 직후부터 오는 11월 5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해 휴업 중이다. 연합회 소속이 아닌 일부 가게들도 피해자를 추모한다며 임시 휴업에 돌입했다. 한 일식점은 직원 일동 명의로 국화꽃을 사서 가게 앞에 놓고, 수익금을 피해자와 유족을 위해 쓰겠다는 문구도 걸어놨다.
연합회 소속의 한 식당 사장 한아무개씨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영업을 중단했다. 음악부터 껐고 손님들 다 내보낸 후 직원들도 다 퇴근시켰고, 이제야(사고 이틀 후) 나와서 뒷정리를 하는 중"이라며 "코로나 이후 처음 제대로 맞는 큰 휴일이라 (가게들이) 기대를 했으나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모두 애도가 먼저라는 마음으로 휴업 중"이라고 말했다.
▲ 조계종 노동사회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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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찾아 이태원역 1번출구앞에 마련된 추모장소에서 헌화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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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현장이 왜 아무 관리없이 방치됐느냐는 시민들의 항의는 이따금씩 터져 나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이태원을 찾았다는 신아무개(64)씨는 "대통령 관저에 쓴다고 경찰 700명 끌고 다니지 말고 이런 문제에 만전을 기해달라"며 "정말 민생과 안전에 힘써 사람들이 죽지 않게 집중해달라"고 말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 20여명도 이날 오후 녹사평 광장 합동 분향소를 다녀온 후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았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이미 비슷한 인파에 철저히 대비한 사례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며 "지자체와 정부는 희생자와 유족의 입장에 서서 이들을 위한 후속대책과 수습에 만전 기하고, 참사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예방을 다하라. 다시는 이런 참사로 국민이 유가족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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