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변당한 내 딸 장기기증도 못한대요” 다시 무너진 엄마

양한주,이형민 2022. 10. 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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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태원 참사 유족 임모씨는 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생전 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해 전남 목포에 있는 간호대에 입학해 간호사를 꿈꿨던 딸 박모(27)씨는 가족들에 장기기증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었다.

"장기기증이 어렵다"는 병원 측의 말은 임씨와 가족들에게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딸이 겪었을 극심한 고통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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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족 사연
장기기증 의사에도 거절 당해
귀국 앞둔 오스트리아 유학생도 참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서 슬픔에 잠긴 채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태원 참사 유족 임모씨는 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생전 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해 전남 목포에 있는 간호대에 입학해 간호사를 꿈꿨던 딸 박모(27)씨는 가족들에 장기기증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었다. 딸의 비보에 식사도 못하고 눈물만 쏟던 임씨는 딸의 의사를 존중해 어렵게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하지만 병원으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지난 29일 밤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구조돼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날 박씨는 대학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사고를 당했다. 임씨는 이튿날 새벽 3시 경찰로부터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허둥지둥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살아있다는 소식에 잠시 희망을 품었지만, 산소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딸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사고가 난 헤밀톤호텔 옆 골목에서도 아래쪽에 있었던 박씨는 몸 전체가 강한 압력에 깔려있어야 했다.

슬픔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렵사리 장기기증 뜻을 밝혔지만, 이미 박씨는 기증이 어려울 정도로 장기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 “장기기증이 어렵다”는 병원 측의 말은 임씨와 가족들에게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딸이 겪었을 극심한 고통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전했다. 장기기증 불가 판정을 받은 30일 오후 5시30분 박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임씨를 위로한 건 박씨보다 다섯 살 어린 둘째 딸이었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후 동생은 “언니는 착하니까 좋은 곳에 가서 엄마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우리가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해”라며 엄마를 안았다고 한다.

박씨의 이모는 “조카는 대학에 들어간 뒤 ‘평생 일한 엄마 이제 호강시켜줄 일만 남았다’고 말했던 착한 딸이었다”고 전했다. 이 말에 임씨는 다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고, 둘째 딸이 오열하는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유족들은 박씨가 20년 넘게 살았던 광주에 빈소를 차리기 위해 딸을 데리고 내려갔다.

타지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외국인 피해자들의 가족들도 속속 한국을 찾았다. 오스트리아·한국 이중국적인 김모(24)씨 부모는 지난 30일 오전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아들의 황망한 사망 소식을 듣고 31일 오후 경기도 고양 동국대일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한 김씨는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 친척 집에 머물며 2개월짜리 국내 대학 외국인어학당에 다니고 있었다. 오는 7일 공부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김씨 사촌 형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 덩치가 좋고 건장했던 사촌 동생인지라 비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내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활발하고 밝은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 부모는 친지들과의 논의 끝에 아들의 빈소를 동국대일산병원에 마련하기로 했다.

사망자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했던 서울경찰청은 이날 마지막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40대 여성 1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 측에 사망 사실을 알렸다. 이로써 이태원 참사 사망자 154명 전원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은 마무리됐다. 외국인 사망자는 14개국 26명으로 집계됐다.

‘이태원 참사’로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양한주 기자, 고양=이형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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