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곡물 수출 협정 중단”…밀값 7% 뛰며, 커지는 애그플레이션 공포

송승환 2022. 10. 3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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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밀밭. 연합뉴스

곡물 수출을 인질로 삼은 러시아의 변덕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흑해를 지나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을 공격하지 않기로 한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해서다. 식량을 무기화한 러시아의 변심에 시장이 다시 요동치며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31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12월물의 가격은 장중 부셸당 8.9325달러로 7.7% 급등했다. 1부셸 27.216kg이다. 옥수수(2.8%)와 대두유(3%) 등 다른 곡물 가격도 뛰었다.

지난 7월 이후 안정세를 찾아가던 곡물 가격이 들썩인 건 지난 29일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항구의 농산물 수출에 관한 협정 이행을 중단한다”고 성명을 내면서다. 지난 7월 UN과 튀르키예가 중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 선박을 다음 달 19일까지 120일간 공격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었다. 러시아가 이를 뒤집으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런 결정의 이유로 이날 크림반도 남서부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 있는 흑해 함대를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공격했다는 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 공격 주장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식량 무기화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산 옥수수 2만6000t을 선적한 화물선 라조니호가 지난해 8월 1일 흑해의 오데사에서 출항하고 있는 모습. AP

러시아의 변심에 국제 곡물 가격이 요동치는 건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이 대부분 흑해 항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 세계 곡물 시장 점유율은 밀 27%, 보리 23% 옥수수 14% 등이다. 흑해 항로가 막히면 세계 식량 공급에 동맥경화가 생길 수 있다.

블룸버그는 “전 세계 밀과 보리 수출의 4분의 1 이상, 옥수수 화물의 5분의 1 등이 흑해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N 사무국은 “흑해 항로가 다시 막히면 950만t 이상의 곡물과 식료품의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성명을 냈다.

세계의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이 막히면 그 충격은 전 세계로 확산한다. 실제로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 만에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 가격은 21%, 보리 가격은 23% 상승했다. 비료 가격도 40% 비싸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 식량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지고 이미 심각한 식량 부족에 직면해 있는 가난한 국가들에 치명적인 기근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이클 맥도비츠 런던 라보뱅크 선임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곡물 수출을 못 하면 다음 농사의 파종을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장기간 전 세계의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흑해 항로가 당장 막힌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튀르키예, UN 등은 31일 항구에서 곡물 수출 선박 12척의 출항을 결정하고 러시아 대표단에 통보했다. 블룸버그는 “시장에선 러시아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긴장이 더 고조된다면 밀 가격은 앞으로 5~10%가량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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