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K원자로' 수출 간다…폴란드와 손잡고 2~4기 추진

정종훈, 임성빈 2022. 10. 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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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바라카 원전 3호기 전경. 지난 2009년 수주에 성공하면서 수출한 한국형 원자로다. 뉴스1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폴란드와 손을 잡고 13년 만에 한국형 원자로 수출에 나선다. 원전 2~4기 규모로 예정된 사업 수주가 거의 확실시되면서 'K-원전'의 사상 첫 유럽 시장 진출이란 의미를 갖게 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내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폴란드 국유재산부, 한수원·폴란드전력공사(PGE)·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ZEPAK)은 3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각각 원전 개발 계획 수립과 관련한 양해각서(MOU)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날 행사엔 이창양 산업부 장관, 황주호 한수원 사장,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지그문트 솔로쉬 제팍 회장 등 양측 고위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10월 26일자 B1면 참조〉
이번 사업은 정부 측 협력을 바탕으로 양국 3개 기업이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한국형 원자로(APR1400) 수출을 추진한다는 게 핵심이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240㎞ 떨어진 퐁트누프엔 제팍이 운영 중인 화력발전소가 있다. 조만간 운영을 중단하는 이곳 발전소 부지 등에 새로운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6기 규모의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사업(약 40조원)과 별도로 진행되는 민간 중심 사업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퐁트누프는 화력발전소가 있는 곳이라 주민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송전망과 용수 확보 측면에서도 좋다. 발트해 인근의 정부 사업 추진 지역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MOU와 LOI 체결이 곧바로 원전 수주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전 기본계획을 함께 마련하는 등 사실상 최종 계약에 가까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 수주에 다가선 건 한수원의 가격 경쟁력과 자금 조달 능력, 정해진 공기 내에 건설을 마치는 시공 역량 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원전의 건설 단가는 kW(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중국(4174달러), 미국(5833달러) 등보다 훨씬 낮다.

이는 한국과 기술 협력을 통해 기존에 의존하던 석탄 발전에서 원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폴란드 측 목표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꾸준한 원전 세일즈가 더해지면서 8월부터 폴란드 측이 협력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언론 등에선 양국 간 방산 협력이 원전 등 산업·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신 폴란드 부총리는 이날 최종 계약 확률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100%"라면서 "몇년 내에 원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번 계획은 폴란드의 전략적 목표인 저렴한 에너지 공급과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업 간 프로젝트지만 폴란드 정부는 민간·정부 원전 사업을 똑같이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번 사업을 통해 2~4기 규모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향후 한국형 원자로 4기를 수출하면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4기 계약액인 186억 달러(약 26조5000억원) 수준을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로드맵도 사실상 첫 단추를 끼웠다. 중동(UAE), 아프리카(이집트)에 이어 유럽 원전 시장까지 진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원전 노형 수출은 UAE 사업 수주 이후 13년 만에 물꼬를 트게 됐다. 지난 8월 말 3조원 규모의 계약을 따낸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 사업은 건물·구조물 건설과 기자재 공급 중심이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3파전을 벌이고 있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등 인접국 프로젝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국내 원전 생태계에도 단비가 됐다. 국내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에 이집트, 폴란드 사업까지 더해지면 일감 걱정을 당분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폴란드 사업을 따내게 되면 원전 노형부터 기자재까지 밸류체인 전 분야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원전 수출이 이뤄지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대부분의 기자재를 납품하게 된다. 최소 UAE 바라카 사업 급의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폴란드가 함께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 현재 민간 발전사 제팍이 운영하는 화력발전소 부지에 원전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사진 제팍

폴란드와의 원전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잡았다. 웨스팅하우스는 앞서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APR1400 수출을 막아달라는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28일엔 폴란드 정부의 루비아토브-코팔리노 사업자에 웨스팅하우스가 선정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때문에 향후 한국의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미국 측 견제를 뚫고 민간사업으로 반격한 셈이 됐다. 사신 부총리도 "(소송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의견 차이라고 본다. 곧 좋은 판결이 나온 뒤에 계속 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폴란드 민간 원전 사업 계약에 근접하면서 정부 사업(루비아토보-코팔리노 원전)에서도 웨스팅하우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가능성이 커졌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웨스팅하우스 시공 능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원자로·증기 발생기 등 핵심 기기를 우리가 공급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라고 밝혔다.

앞으로 한국·폴란드 3사는 한국형 원자로 기술을 기반으로 원전 건설 계획을 함께 마련하게 된다. 올 연말까지 소요 예산, 자금 조달, 예상 공정 등을 포함한 개발계획을 짤 예정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에선 이르면 내년 말 본계약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공사 단가와 부지 상태, 투자 비율 등 여러 조건을 1~2년가량 세세히 따져야 하는 만큼 협상이 깨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수원으로선 경쟁 입찰 등 험난한 과정을 뛰어넘어 곧바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최종 계약으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면서 "다만 폴란드가 자본 투자를 요구할 수 있는 만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정부가 나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K-택소노미를 활용한 투자 금융 상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종훈ㆍ임성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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