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 정부는 왜 '죄송하다'는 말을 안하나
[전지윤 기자]
▲ 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지난 10월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길 바닥에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
ⓒ 권우성 |
2014년 4월 16일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모든 것이 되살아나고 있다. 내가 세월호에 타고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은 이제 내가 이태원 골목에 함께 끼어 있고,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시 우리 모두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그것을 함께 느끼면서 위로하고 나누려고 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슬픔과 분노를 일으키려고 작정한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저기에 마약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헛소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드물게 보이는 악플들이 아니다. 주목할 가치나 퍼나를 의미도 없는 그런 반응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우려는 훨씬 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존재를 보면서 얼마든지 무시해 버릴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와 책임자들의 태도와 주장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자꾸 볼 수밖에 없는 언론과 방송, 거기에 나오는 '전문가'들, 정부와 책임자들의 태도와 주장들이다. 토요일 저녁에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던 속보부터 시작해, 일요일 온종일 뉴스를 틀어놓고 언론을 뒤지면서 이 사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모아지는 이야기는 '주최 측이 없는 자율적 행사이기에 누구의 책임을 묻기가 애매하고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묻고 있었다. '외국의 종교적 전통이 상업적으로 뒤틀려 젊은이들이 술먹고 클럽가는 날'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주변 상인들이 돈벌이 기회로 삼았고, 사고가 났는데도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이 있었고, 유명인이 왔다는 이야기에 몰려가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사고가 났는데도 옆에서 춤추고 떼창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젊은이들에게, 상인들에게, 술먹고 놀다가 조심하지 않은 개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로 귀결됐다. 그리고 30일 저녁부터는 더 직접적인 '책임자'들을 찍어내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그 골목길 바닥에 누군가 '술을 뿌려서 더 미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젊은 남성들 대여섯 명이 밀어라고 소리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CCTV를 입수하고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의 말에 이 모든 이야기들의 핵심이 있는 것 같다.
"예년보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더 많은 인원이 몰린 것은 아니고, 미리 경찰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 곳곳에 소요와 시위가 있어서 경찰이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
▲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단체 조문을 하고 있다. |
ⓒ 이희훈 |
결국 한마디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등장할 때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런 비극이 벌어진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잘못된 대응에 죄송하다'는 그 한마디를. 그러나 끝까지 그런 말은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그 말만은 피해가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지금은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니라 다같이 추모할 때라면서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지금은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위로에 온 마음을 모을 때"라면서 "비극적인 참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당국 대응의 문제점에 대한 시청자 제보'를 부탁한 'PD수첩'에 좌표를 찍었다.
30일 하루 종일 언론과 방송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느꼈을 것이다. 왜 누구나 알만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정면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언론인이나 '전문가'가 이처럼 보기 힘든가?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통행로를 확보하면서 인원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은 집회나 행사에 관여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규모가 어느 선을 넘으면 지하철역의 무정차 통과와 차량 진입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대규모 집회에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다 경험해 본 일이다. 주최 측이 따로 없는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서 바로 국가와 지방정부와 경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행사에는 구급차, 소방차, 공무원이 빨리 출동할 것이 아니라 옆에서 비상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 현장을 찾아 참사 현장을 살펴보며 소방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바로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또 정치적,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민방위복의 색깔을 바꾼 것 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모든 언론인과 '전문가'들은 바로 이것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과 전문가들의 존재 이유이고, 그런 목소리가 나와야 지금 이 엄청난 슬픔과 분노가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연결되고 위로받는 느낌일 것 같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가장 큰 문제는 단지 7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데도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도,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하고 미안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것이 핵심 문제였다. 오히려 '어떻게 이 책임을 벗어나고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만 계속 신경쓰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비극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때의 그 정부의 대응 태도도 돌아왔다.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가장 '정치적(정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윤석열 정부와 이들을 지지하거나 눈치보는 주류 언론들이다. 그들에게선 이 비극의 본질과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하고 책임지겠다는 진정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토요일 밤 이태원으로 갔던 이들의 마음과 모습을 상상해 본다. 코로나도 이겨내고 학업, 취업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개성을 뽐내기 위한 복장과 분장을 하고, 친구들과 셀카를 찍으며 즐거웠을 것이다.
그 설레고 즐거웠던 마음은 어느 순간 걱정과 공포로 변해갔을 것이고, 비명과 절규 속에서 결국 영원히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 영혼들 앞에서 아무런 사과의 뜻도 보이지 않고 책임지려는 자세도 없는 자들을 보고 있으니 슬픔과 분노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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