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CPR, 이틀 지나도 떠올라” 심리지원단 찾은 이들
“자면서도 생각나고요. 식당에서 밥 먹는데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 얘기하면 신경이 곤두서고…”
31일 오후 4시쯤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왼편에 마련된 심리지원 상담소를 찾은 김 모(29) 씨를 만났다. 30분가량 상담을 받고 나온 김 씨의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사고 발생 후 이틀이 지났지만 그날의 참혹한 현장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는 지난 29일 핼러윈을 맞아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참사를 목격하고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다. “처음에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놀라서 몸이 얼어붙은 듯 경직됐는데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형식적으로 심폐소생술을 배웠지만, 실제 사람한테 이렇게 적용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김 씨는 회상했다. “제가 심폐소생술을 했을 때도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뒤라 효과가 없어서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아주 힘들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김 씨는 잠을 잘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등 일상생활 중 문득 사고 현장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름대로 스트레스 관리를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 분향소를 찾은 김에 심리 상담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심호흡해라, 최대한 (사건 관련) 접촉을 줄이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분향소 옆 심리상담소 설치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31일부터 서울 내 합동분향소 2곳(서울광장·녹사평역 광장)에 심리지원 상담소를 마련했다. 이태원 참사로 마음이 힘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센터 소속 정신건강요원들이 상담을 진행한다.
함형희 서울시 정신건강과장은 “유가족과 현장에서 직접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상담) 우선순위지만 TV, SNS 등을 보고 과거 트라우마가 올라온 사람들, 일반 시민까지 확장해서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두 번 상담으로 끝날 사람, 지속해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을 구분해서 상담 횟수와 장소는 달라질 수 있다”면서 “오픈된(공개된) 공간에서 상담하는 것이 불편한 경우, 상담소 옆에 세워진 마음안심버스에 개별 공간을 마련해 집중적으로 상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면 상담뿐 아니라 전화로도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지난 30일 보건복지부가 꾸린 '통합심리지원단(지원단)'은 심리지원 핫라인(1577-0199)을 통해 정신심리 전화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단의 총괄을 맡은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심민영 센터장은 “어제(30일)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오늘(31일) 상담 가이드라인, 운영방안 등 체계를 갖춰나가는 과정인데, 이미 상담 번호로 연락한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지원단에는 정신건강 전문가 100명이 투입된다. 이들은 유가족 600여명(사망자당 4명), 부상자 150명, 목격자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한다. 전문가 1명당 10명을 지원하는 꼴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전문의 2명, 정신건강전문요원 18명, 행정 요원 등 30명이 참여하고, 서울·용산 등 광역 및 자치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도 전문가 인력이 투입됐다. 그밖에 부족한 전문가 인원은 신경정신의학회 등 민간학회 5곳에서 지원한다.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는 “재난정신건강지원은 다른 나라의 경우도 72시간 이내에 세팅하고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1차로 상담전화 등 기존시스템을 활용한다. 다만, 1차 유가족 외에도 일반 국민,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받으신 분들, 현장 구조 인력 등 수요가 평소보다 증가하기 때문에 민관 협력으로 자원봉사, 아웃소싱 등을 통해 전문가를 파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반 감정은 정상…심해지면 전문가 찾아야”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초반에 슬픔, 분노, 고통 등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라고 말한다. 심 센터장은 “직접 경험뿐 아니라 간접 노출되더라도 10명 중 7~8명은 심리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면서 “잠이 안 온다든지, 집중이 잘 안 된다든지, 마음이 불안하다든지 등의 증상은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한 고통이 지속하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백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80% 이상은 회복을 하시고, 10~20%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넘어가는 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분들을 초기에 발견해 놓치지 않고 치료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을 직접 겪은 유가족이나 부상자의 경우 상담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센터장은 “유가족과 부상자는 노출 강도가 강하신 분들이라 명단이 확보되는 대로 1:1로 접촉해 선제적으로 개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기본적으로 숨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강할수록 도움을 요청 안 하고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지금은 안 내켜도 심리 상담 등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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