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보는 책…佛서 되찾은 외규장각 의궤, 10년만에 모두 공개

김정연 2022. 10. 3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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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 특별전
효종국장도감의궤의 일부. 왕의 장례 행렬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 문서. 지금으로 치면 새벽 1시쯤 시작하는 장례행렬에 필요한 횃불을 든 사람, 상복을 입고 말을 탄 사람의 뒷모습 등까지 자세하게 그려넣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011년 프랑스에서 장기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귀환 10년을 맞아 모두 공개된다. 11월 1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전에서다.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입구는 서고 모양으로 꾸며, 1월 전시 때 교체될 20여점 외의 의궤 전 책을 진열했다. 의궤 목록과 번호를 기재해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책마다 크기와 두께가 제각기 다르다. 김정연 기자

백서 격 의궤, 왕이 보는 건 딱 한 권만


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를 열라'고 지시한 왕의 전교부터, 행사를 위해 관청 사이 오간 문서와 왕과 신하들이 논의한 기록까지, 모든 기록을 총망라한 '백서' 같은 책이다. 행사마다 문서의 양과 종류가 달라, 책마다 크기와 두께도 다르다. 조선 초기의 의궤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조선 중기 이후의 의궤만 남아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군이 약탈해갔다. 통상 3~9부 펴낸 의궤 중 왕이 보기 위해 만든 단 한 권 어람용 의궤를 왕실의 보물창고 격이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했는데 고스란히 빼앗긴 셈이다. 2011년 장기임대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왔다.

귀환한 의궤 일부를 대중에 공개한 적은 있으나, 297권 전권을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환 후 10년 간 국내 전문가들이 의궤를 연구한 학술자료 및 데이터베이스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를 10여년간 많이 연구했고, 성과를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297권을 모두 공개하게 됐다”며 “297권 대부분은 임금만 볼 수 있던 어람용 의궤로, 조선의 문화 역량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왕이 보는 책, 비단 표지에 묵직한 종이


어람용과 분상용 표지. 어람용 의궤의 하단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분류용으로 붙인 스티커가 그대로 남아있다. 떼어내면서 생길 훼손 우려도 있고, 프랑스에 있던 시기의 기록이기도 해 그대로 남겼다. 김정연 기자

어람용 의궤는 행사에 관여하는 관원들이 볼 수 있게 만든 일반 분상용 의궤와 외양부터 차이가 크다. 분상용은 붉은 삼베에 먹으로 쓰고 철판으로 고정하지만, 어람용은 초록 비단 표지에 제목은 별도 종이로 붙이고, 황동으로 철한 뒤 국화 모양 장식까지 더했다.
효순현빈묘소도감의궤(하) 외규 169. 왼쪽은 어람용, 오른쪽은 분상용이다. 왼쪽 어람용은 붉은 기준선도 손으로 긋고, 글씨도 최고 수준의 관원이 조금 더 널찍하고 바르게 썼다. 오른쪽 분상용은 나무틀로 기준선을 찍어내고, 글씨를 쓰는 일반 관원이 써서 어람용보다는 덜 단정하다. 외규장각 의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의궤 안쪽도 차이가 뚜렷하다. 어람용은 글씨를 잘 쓰는 최고 수준의 관원인 '사자관'이 선부터 직접 긋고 반듯한 해서체로 써넣은 반면, 분상용은 먹틀로 기준선을 찍어내고 일반 글씨 담당 관원인 '서사관'이 글씨를 썼다. 종이의 질도 달라, 어람용에는 밀도가 높고 무거운 고급 닥종이인 '초주지'를 썼다.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떠낸 뒤, 나무망치로 많이 두드릴수록 조직이 치밀해지고 겉면이 매끈해진다. 고급 종이일수록 먹이 잘 번지지 않는다. 어람용 닥종이는 먹이 거의 번지지 않은 채 지금도 경계선이 또렷하다. 먹으로만 그려 흑백인 분상용과 달리, 어람용은 색색의 칠을 더한 그림이 특징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거의 밀폐 상태로 보관된 의궤는 반환 당시 보존 상태가 좋았고, 반환 이후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한 덕에 세월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다만 프랑스 측이 붙인 분류용 스티커와 연필로 기록한 쪽번호, 장서 확인을 위해 찍은 도장 등 빼앗긴 역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실록 '한 줄'도 의궤 '한 권', 모자란 설명은 그림으로


실록에는 자세히 쓰이지 않은 건축물 관련 기록이 의궤에는 그림과 함께 자세히 실렸다. 사진은 문희묘영건청등록, 어람용(외규 219)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헌종(1834-1849)이 아버지 효명세자의 묘인 '수릉'을 이전하고자 신하들과 논의하는 부분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몇 줄에 불과하지만, 의궤에는 두 권에 걸쳐 일을 시킨 과정, 논의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실록에는 한 줄로 기록된 궁궐건축에 관한 내용도 의궤로는 책 한권 분량의 자료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의례 행렬, 기물 제작법 등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기술해 조선 시대 표준을 확인할 수 있다. 왕과 왕비의 장례식 이전에 임시로 시신을 보관하는 관(찬궁) 4면에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그리던 4수도는 의궤 기록에만 남아있다.
임혜경 학예연구사는 "의궤에는 궁궐 건축 공사 인부들에게 얼마를 지급했는지까지 적혀있어, 미시사적 연구에도 좋은 사료"라며 "기록이 상세하고 방대한 데다, 그림으로 된 기록까지 있는 게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선왕실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반환 안 된 3권 중 1권, 복원해 만져볼 수 있어


전시 말미에는 의궤 한 권을 복원해 관람객이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한지장, 서책장 등 각 분야 장인들이 참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이 300권의 책을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지만, 반환받은 297권 외의 3권 중 1권은 영국 국립도서관에, 2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들 세 권은 다른 경로로 구매한 기록이 있어 돌려받지 못했다. 이번 전시 말미에는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고스란히 복원한 복제 의궤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직접 넘겨볼 수 있도록 했다. 영국 국립도서관이 제공한 이미지파일에서 그림 선을 추출해 한지에 프린트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해 책을 완성했다. 각 분야 장인이 참여해 최고의 기술로 만들었지만, 어람용 의궤의 종이 질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의궤 4차 반환분이 27일 서울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지고 있다. 4차 반환분을 끝으로 297책 전체가 한국에 돌아왔다.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1928~2011)가 베르사유 별관에서 어람용 의궤 297권을 발견하며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박병선 박사는 2011년 5월 의궤가 국내로 돌아온 뒤, 11월 23일 작고했다. 윤성용 관장은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고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임무인양, 그 일이 끝나자 돌아가셨다”며 “그를 기리기 위해 11주기인 11월 21일부터 일주일간 무료로 전시장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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