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신한 시민 모습 그대로…이태원 참사 보도 뭇매

이은호 2022. 10. 3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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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 꽃다발이 놓여있다.    사진=이소연 기자 

29일 밤 서울 이태원동 일대에서 압사 사고가 벌어져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은 기존에 편성했던 오락 프로그램 대신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한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뒤엉켜 넘어져 있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진 모습 등 적나라한 참사 현장을 송출해 시청자들에게 질타 받았다.

MBC는 30일 내보낸 ‘제보영상으로 본 이태원 참사 현장’ 리포트에서 압사 사고가 본격화된 당시 목격자가 촬영한 영상을 내보냈다. 해당 영상에는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인파에 깔린 시민의 양팔을 붙잡고 빼내는 모습, 구급대원이 들것에 실린 부상자를 나르는 모습, 시민 네 명이 실신한 부상자의 양팔과 다리를 들어 나르는 모습,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부상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KBS와 SBS, 종편 채널들도 사고 당시 참상이 담긴 제보 영상을 일제히 보도했다. 화면이 흐리게 처리되긴 했지만 온라인에선 ‘보도 영상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제 아무리 뿌옇게 한다 해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사고 모습은 단지 말초적인 자극과 감정 동요밖에 나오지 않는다”(green_o******, 이하 트위터 아이디), “피해자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힘든 보도 방식”(lalilu7*******), “끔찍했던 사고 현장과 피해자들이 실려 가는 모습들을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나”(tdays*****) 등의 의견이다. KBS 등 일부 방송사 앵커들은 ‘주변 목격자들은 사고 영상을 제보해달라’는 취지로 발언해 비판받았다.

한국기자협회가 정한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자극적인 장면을 단순 반복하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오열하는 피해자 가족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 보도 또한 자제한다. 사고 발생 직후 선정적인 보도가 계속되자 기자협회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회원사에 대해서는 강력한 징계를 검토하겠다”며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KBS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상자가 노출되는 장면 등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화면은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29일 밤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압사 참사가 났다.   사진=최은희 기자

부적절한 인터뷰도 도마 위에 올랐다. MBC는 현장에 있던 시민을 전화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발언을 내보내 논란을 불렀다. 해당 시민은 “근처 가게에서 단순 압사는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중략) 이태원에서 약이 돌았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약물이라든가 생화학적인 뭔가가 있지 않았나”고 했다. 시민을 인터뷰한 앵커는 “조심스러운 추정”이라고 단서를 달면서도 “목격자가 보기에는 단순 압사는 아니다”라는 말을 재차 건넸다. 재난보도준칙 중 유언비어 방지 조항(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에 어긋난 보도다.

언론사가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뉴스특보를 생중계하며 열어놓은 실시간 채팅과 온라인 기사 댓글에선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 지상파와 종편 채널 가운데선 KBS만이 뉴스특보 채팅창을 닫아둔 상태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도 피해자를 겨냥한 악성 댓글이 이어졌으나, 비속어 및 성적 표현 등을 포함하지 않아 인공지능(AI) 필터링기술로 차단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뉴스 댓글 작성란 하단에 “이태원 사고 댓글 작성 시 주의 부탁드린다”며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댓글로 상처받지 않도록 악플이나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는 글들은 삼가주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달아뒀다.

민주시민언론연합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대본 없이 수시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선정적인 장면이나 사상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한 행태는 문제다. 급박한 현장 상황을 전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지만, 적나라한 사진과 영상을 무분별하게 전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채팅과 댓글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지속되는 상황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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